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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글쓰기

힘 빼는 게 포인트

by 레마누

지난주 목요일 친한 후배에게서 점심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개학하면 한번 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나 싶었는데, 브런치작가된 기념으로 점심을 산다는 것이다. 방송국작가인 친구라 역시 한 번에 됐구나. 생각하며 축하한다는 답을 보냈다. "아니, 언니요."라는 답이 왔다. 2초 동안 가만히 톡을 보고 있다 알았다. "아, 일 년 전에 된 걸." "벌써 1년 됐어요? 일단 만나요."


터프한 친구다. 어디서 볼까. 뭘 먹을까 고민하다 갑자기 이야기는 스크린골프장으로 갔다가 스크린보다는 9홀이라도 돌자는 말이 나왔다. 부부동반으로 같이 골프 친 지 5년이 넘은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골프친구다.


먹는 것보다 공치는 걸 좋아하는 우리다. 항상 남편들이랑 같이 만났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둘만 만났다. 남편은 혼자만 놀러 간다며 구시렁대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룰루랄라 가방을 쌌다.


캐슬렉스CC제주

친구네 집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친구차로 골프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따로 예약을 하지 않고, 줄을 서는 순서대로 9홀을 도는 퍼블릭골프장이다. 나인브리지 CC에도 비슷한 곳이 있는데, 거긴 6홀이라 약간 아쉬웠다. 캐슬렉스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친구가 남편과 자주 갔었다길래 친구만 믿고 무조건 갔다.


도착한 시간 10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카트를 대기시켜 놓았다. 저 사람들이 다 빠져야 우리가 친다.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친구가 사고 온 김밥과 함께. 나중에 커피숍 사장님이 외부음식반입금지입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세 개 남은 김밥을 가방에 넣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필드에 올라간 시간은 12시였다. 골프든 뭐든 기다리는 게 힘들다.


한 달 만에 채를 잡을 잡은 내 뒤로 수많은 갤러리들이 있었다. 가뜩이나 오랜만에 치는 거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오른쪽으로 공을 보내는 걸 보고 왼쪽을 공략했는데, 공이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어? 왜 왼쪽으로 가지? 중얼거렸는데 뒤에 있던 남자분이 "서기를 왼쪽 보며 섰어요."라고 대답했다. 네. 하고 대답하고 서둘러 카트를 잡고 페어웨이로 들어갔다. 처음에만 갤러리들이 있었고, 다음 홀부터는 우리 둘만 집중해서 쳤다.


캐슬렉스 퍼블릭에서는 점수가 의미 없다. 우리 둘 다 연습한다 생각하고, 무조건 많이 쳤다.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드라이버와 우드가 잘 맞았다.


이상한 일이다. 연습장에 부지런히 다닐 때는 잘 쳐야지 하는 욕심으로 필드에 나간다. 잘 맞으면 다행이지만, 골프는 힘을 빼야 하는 운동이다. 힘이 잔뜩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 생각보다 공을 못 치며 그때부터 당황하기 시작한다. 멘탈이 흔들린다. 갑자기 그렇게 많이 연습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어떤 때는 그립을 잡는 방법을 까먹기도 한다. 언젠가는 캐디언니에게 장갑을 왼쪽에 껴요? 오른쪽에 껴요? 물어본 적도 있었다. (나는 원래 왼쪽만 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기대로 없이 나갔다. 그럴 만도 한 게 한 달 만에 채를 잡았는데 무슨 연습을 했겠는가. 거기다 바로 전 날 잡은 약속이었다. 나보다 경기에 진심인 친구는 약속이 잡히자마자 남편과 스크린에서 18홀을 돌았다는데,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밖에 나가는 게 좋아서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좋아서 공이 잘 날아가든 말든 신경 안 썼다. 그랬더니 공이 쭉쭉 뻗어나가는 게 아닌가.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른 채는 휙휙 왼쪽어깨에 걸쳐졌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아이언을 쳤는데 평소보다 거리가 더 나왔다.



머리 고정. 오른발은 최대한 늦게 떼기. 우회전좌회전. 치고 돌기.


골프를 처음 배울 때 프로가 했던 말이다. 7년 전에 들었던 그 말만 기억한다. 기본에 충실하면 중간은 한다. 더 잘 치려고 하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간다.


글쓰기는 어떨까?


글쓰기의 기본은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아무 할 말이 없는데 글을 쓰진 않는다. 여고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돌렸던 쪽지에도 목적이 분명했다. 내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딜 때 쓴다. 꾸밈이나 과장 없이 담백하게 쓴다. 감정이 치우치지 않고, 단어를 남발하지 않으며,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다. 좋은 글은 읽기 편한 글이다.


잘하는 사람은 뭐든 쉽게 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인상 쓰며 노래하지 않는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미끄러지는가. 쓱쓱쓱 붓 하나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쇼츠에 나오는 긴 머리 묶는 법을 선보이는 사람도 쉽게 쉽게 한다. 정작 따라 하려면 어렵고 힘든데 볼 때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해 보다 좌절한다. 한순간에 얻어지는 건 없다, 로또 1등도 많이 산 사람이 된다.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과 인내. 끈기와 집요함이 필요하다. 간절히 바라되 무심하게 쓴다.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무겁지만, 표현은 간결하고 선명하다.


내게 없지만 글을 쓰려면 꼭 필요한 것. 오늘도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겨우 한 장을 써 내려갔다. 날이 점점 풀리고 있다. 글을 쓸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말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힘 빼고 툭. 치열하게 쓰지만, 읽는 사람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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