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길을 걷다 계란 하나를 주웠다.
-이게 웬 횡재람. 길에 계란이 떨어져 있다니. 얼른 집에 가서 계란을 부화시켜야지. 20일만 기다리면 병아리가 나오겠네. 병아리를 잘 키워서 닭이 되면 시장에 가서 파는 거야. 닭을 팔고, 실한 돼지 새끼 한 마리를 사고 와야지. 암퇘지를 사야겠지.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고, 쑥쑥 자라니 금방 클 테고, 새끼를 한 열 마리 정도 낳으면, 아고, 집이 좁아서 어떡하나. 일단 돼지가 열 마리면 그중에 반을 팔아서 송아지를 사 오는 거야. 송아지가 소가 되면 새끼를 치고, 또 송아지를 낳겠지. 아고, 바쁘다 바빠. 언제 돼지를 키우고, 송아지를 돌본단 말이야. 큰 일어났네. 너무 바쁜데.
툭.
농부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계란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농부가 짧게 탄식했다. 농부는 머리를 몇 번 긁적이더니 가던 길을 갔다. 농부의 뒤에 깨진 계란이 있었다.
잠자기 전에 생각한다.
-이번에 쓴 소설이 당선되면 어떡하지? 당선 알림 전화를 받은 작가들은 다 깜짝 놀라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던데, 일단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해야겠지. 당선소감에 남편이랑 아이들 이야기도 쓰고, 또 내가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써야지. 상 받으러 나 혼자 갈까? 아이들이랑 남편이랑 같이 갈까? 간 김에 서울구경도 하고 며칠 있다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상금 받은 걸로는 뭘 하지? 20년 넘은 식탁을 바꿀까? 참, 입고 갈 옷이랑 신발, 가방이 없는데. 머리도 엉망이고. 일단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괜찮은 정장 한 벌과 어울리는 구두를 사야겠다.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은 편한 구두로 사야지.
잠은 점점 달아나고, 머릿속에서는 서울에 몇 번을 왔다 가고, 나는 이미 소설가가 됐다. 혼자 낄낄댔다가 고민하다 잠이 든 밤이면 꿈도 없이 푹 잔다. 당선 전화는 오지 않고, 나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꼭 당선소감과 심사평을 읽는다. 나보다 한 걸음 앞선 작가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심사위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면 문제 풀이가 쉽듯이 심사위원의 성향이나 생각을 알면 맞춰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것보다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커닝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처럼 본질보다 부수적인 것에 집중했다.
어느 심사위원의 말이 머리를 때렸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훌륭한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가 공모전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
소설을 쓴다. 공모전에 보낸다. 기다린다. 내 소설이 좋으면 당선이 될 것이요, 별로면 연락이 없을 것이다. 기다린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 같은 소설을 보낼까? 보냈던 소설을 다시 읽는다. 이미 열 번이 넘은 퇴고를 마친 원고는 더 이상 손댈 게 없어 보인다. 좌절한다. 이 소설은 아닌가? 다시 소설을 쓴다. 고친다. 고치는데 공모전 마감이다. 미흡한 원고를 보낸다. 기다린다.
누군가 그랬다. 너무 공모전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요즘은 책을 출간할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여러 가지 길이 있다며 좌절하는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력에 들어갈 한 줄이 필요했다. 21년 전업주부, 세 아이맘이라는 것 말고, 쓸 말이 없다. 작품이 좋으면 작가의 이력 따위 아무도 신경을 안 쓸 텐데, 내 글이 그 정도로 훌륭하지 않다. 그래서 매달린다. 누군가 네 글이 좋아. 인정해 준다면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누가 봐도 좋은 글을 쓰면 된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에서 절로 드러나는 송곳 같은 작품을 쓰면 된다. 그걸 못 하니 이렇게 허튼짓을 하고 있다. 나만의 뚜렷한 스타일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본다. 중요한 건 묵묵히 밀고 가는 뚝심인데, 나는 가을갈대만큼이나 줏대가 없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다.
어떻게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