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월에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마흔에 낳은 막둥이가 학교에 간다는 기쁨에 앞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십 대 중반을 넘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막둥이가 기저귀가 떼면, 밥을 혼자 먹으면 뭐라도 해야지 생각하고 참았는데, 막상 그 시간이 찾아오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뜬구름 잡듯이 막연하게 꿈꿔오던 것들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나는 좋아하는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무채색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울한 겨울방학을 보내던 중 딸친구의 엄마를 만났다.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그 엄마를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반친구의 엄마들을 만나면 이야기의 소재가 거의 정해져 있다. 학교생활, 아이들의 근황, 선생님과 수업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학교에서 연락이 안 오면 생활을 잘하고 있구나. 하는 무심한 엄마라 가끔 엄마들이 전해주는 소식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날도 소식통인 친구엄마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적당히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듣다 말고 내가 물었다.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친구엄마는 움찔하는 모양새였다. 아이들의 소식이 아니라 내 안부가 궁금하다니. 하는 눈치였다.
-언니, 저 실은 이렇게 살아요.
하며 보여준 핸드폰 안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었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면서 학교일에도 적극적인 그 엄마가 사이버세상 속에서는 많은 책을 읽고, 포스팅을 하는 부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속 꽉 찬 책들에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가끔 생각 없는 말을 해서, 역시 어리구나. 혼자 단정 짓곤 했는데,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고 있다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배가 살살 아팠다. 질투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보다 잘 나갈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와 다를 것 없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과 땅처럼 차이 나게 보였다. 예전 같으면 헤어지고 나서 부글거리는 배를 끌어안고 방바닥을 뒹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평소와 달랐다.
-이게 뭐야? 어떻게 하는 거야? 이 책을 네가 다 읽었다고?
-언니, 책스타그램하면 책도 보내주고 그래요.
책을 공짜로 보내준다고? 솔깃한 말이었다. 독서라면 나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하고 있다. 나보다 어리고,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내가 책을 사는 동안 이 많은 책들을 공짜로 읽고 있다니.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언니, 책 좋아하세요?
-정말 좋아하지.
-어떤 책 좋아하세요?
-소설이나 철학, 인문학 같은
다음 날 나는 열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한꺼번에 책이 그렇게 많이 생긴 건 남편이 생일선물로 삼국지 10권을 선물한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잇몸만개 웃음을 지었다. 책을 오른쪽에 쌓아놓고 읽어 내려갔다. 심한 갈증에 시달렸던 사람처럼 허겁지겁 읽었다. 잠자는 게 아까울 만큼 책은 재미있었다. 오른쪽에 있던 책들이 왼쪽으로 넘어가자 나는 오래전에 만들어놓고 방치했던 블로그를 열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블로그명이 눈에 들어왔다. 2014년의 나는 외로웠구나. 생각하며 블로그명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수선화라는 닉네임을 "꿈 많은 베짱이"로 바꿨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꿈 많은 이었고,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라 베짱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 안에서 "꿈 많은 베짱이" 줄여서 "꿈베"라고 불렸다.
주인공들에게는 필수코스가 있다. 평범하게 혹은 구차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일이 터진다. 누군가 어떤 일들이 주인공을 자극한다.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소중한 것을 뺏기거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하고 변하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하게 된다. 대반전을 위해서는 각성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다른 게 좋다. 흐리멍덩하고 찌질해보이는 주인공이 눈을 번쩍 뜨고,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재미는 배가 된다. 바보가 갑자기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 슈퍼맨이 된다. 없던 능력이 생기고, 힘이 세진다.
블로그를 만들고, 책을 읽고, 책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기대했다. 내가 글을 쓰는 순간 세상이 바뀔 것이다. 그동안 안 해서 그렇지 내가 하기만 하면 이웃수는 하루에도 몇 천명씩 늘어날 것이고,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출판사에서는 재야의 고수를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라면 서로 출판하겠다고 아우성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하루 이틀 삼일... 서이추신청은 하루에 한 두 개 꼴이고, 너무 좋다는 댓글은커녕 하트조차 없었다. 나는 블로그 안에서 액션히어로가 아니었다. 도서 인플루언서에 5번 떨어지고 나서 알았다. 책을 많이 읽고 포스팅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감이 떨어지진 않았다. 나무를 흔들고, 바람이라도 불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나는 이만큼 했으니 이제 결과물을 달라고 해봤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세고 셌으니까.
한 달에 20권의 책을 읽고 포스팅을 하면서 뿌듯해하면, 어딘가에 30권을 읽은 사람이 나타난다. 30권을 읽어보자 했더니 누군가는 45권을 읽는다고 했다. 사람을 모르니 눈에 보이는 것을 갖고 판단하게 되는데, 속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2022년 2월 블로그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블로그와 책스타그램,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간간히 소설을 쓰고, 틈틈이 공모전에 원고를 보내고 기다린다. 주인공처럼 갑자기 능력이 향상되진 않았다. 매일 글쓰기를 통해 글근육을 키우고 있다. 헬스장에서 인바디를 재면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수치로 알 수 있다. 눈바디도 무시 못한다. 운동한 날과 안 한 날의 몸이 다르다.
글도 마찬가지다. 지금 쓰는 글이 만족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예전 글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의 문제점이 보였다. 어떤 단어를 많이 쓰는지, 습관처럼 붙이는 조사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멀었다. 하지만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글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각성의 순간은 있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따라오지 않았다. 각성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깨달아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건 깨달음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그리고, 그것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싸움을 잘하려면 맞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 단단하게 맷집을 키운다. 지금 나는 링 위에 올라가기 위해 연습하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불러도 당황하지 않고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게 나를 단련시킨다. 베짱이도 계속 노래를 부르며 목청을 유지한다. 꿈이 사라지지 않게 매일 꿈을 꾼다. 글로 살아남고 싶어서 매일 글을 쓴다. 그것이 나만의 각성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