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꿈이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어?
나는 우물쭈물하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잊은 건 아니야
언제부턴가 한 번도 찾지 않았잖아
바빴어
뭐 하느라?
아이 셋 키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일도 했지
그게 말이 돼? 그건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거잖아.
지쳐서 널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핑계야. 네가 정말 하고 싶었다면 했겠지. 날 찾았겠지.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널 만날 생각이었어.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거야.
그게 언젠데? 내가 다 쪼그라들어서 형체도 알 수 없을 때? 나는 뭐 언제까지 네 옆에 있을 줄 아니?
무슨 말이 그래. 조금만 기다려 줘
넌 그냥 생각이 없는 거야. 진짜 사랑하면 만사를 제쳐도 만나는 거야. 돌아서면 보고 싶고, 같이 있어도 그리워. 나는 네게 그런 존재이고 싶어
나만 바라봐. 나를 중심에 놓고 살아. 내가 먼저야. 나를 만나야 넌 행복할 수 있어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티브이를 껐다. 천천히 컴퓨터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바탕화면에 쓰다 만 원고 폴더들이 가득했다. 시작하고 마무리하지 못했던 나만의 이야기들, 순간 떠오른 것들의 반짝임에 흥분해서 써 내려간 글들이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꿈은 집요하고 냉정하다. 절대 자신을 잊지 말라고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정도는 안 된다고 한다. 저만치에서 잔뜩 인상 쓰고 노려본다. 나밖에 모르는 나만의 꿈. 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나만 아는 괴로움. 어떤 날은 미친 듯이 그립다가 또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꿈은 소설가인데, 소설을 쓰지 않는다. 소설가의 소설가 되는 법을 읽으며, 소설가를 꿈꾼다. 언젠가 세상의 모든 소설이론책을 다 읽고 나면, 그때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다. 내가 아직 소설가가 되지 못한 건 읽어야 할 책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이 나를 누른다. 내가 쓴 어떤 글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점점 작아진다.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기분 좋은 날이면 책을 읽다 말고,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설렘을 안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하얀 벽에 아무것도 칠하지 못한다. 나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