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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pr 27. 2023

콩잎에는 자리젓? 멜젓?

다르다는 틀린 게 아니다




저녁에 콩잎에 자리젓을 넣고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 둘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느닷없이 카톡이 폭주를 했다.


 고기 준비할게요. 콩잎이랑 자리젓도 있습니다. 헤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서귀포 사는 언니가 빨리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언니.. 정말 괜찮아요? 올라올 수 있겠어요??


그럼..


그렇게 갑자기 잡힌 토요일 약속.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언니들이 한 손에 와인을 들고 왔다. 언니들이 반가운 건지 와인이 좋은 건지 몰라도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언니들.


같은 학원의 수학선생님이었던 4살 많은 언니와 3살 많은 언니.


그리고 국어선생님이었던 25살의 나.


돈만 빼고 다 있었던 그 시절. 언니들은 내게 버팀목이었고, 나침반이었으며, 가장 든든한 백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과목은 같은데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한 명은 전형적인 수학선생님의 모습이다. 안경을 끼고 마른 체형에 깔끔한 옷차림. 항상 50센티미터의 자를 들고 다니며 선을 반듯하게  그리는 사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우리가 주임샘이라 불렀던 그 언니는 견고한 이등변삼각형 같았다.


또 다른 수학선생님 언니는 꽃무늬옷을 좋아하고 꾸미는 걸 매우 잘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본인도 그런 스타일로 살고 있었다. 센스 있는 옷차림과 예쁜 가방. 액세서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밑변에 깔려 있는 나. 


우리 셋은 그렇게 삼각형을 이룬 채 학원생활을 고단함을 술로 견뎌내곤 했다




정신없이 먹다가 문득 사진을 찍었다. ㅜㅜ



콩잎에는 멜젓인데


마른 김과 멸치를 좋아하는 언니가 말했다.


콩잎에는 자리젓 아녜요?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내가 말한다


아니지. 콩잎에 멜젓 놓고 밥 싸서 먹어 봐. 진짜 맛있어.


근데 난 멜젓 안 좋아하는데. 고깃집에서도 멜젓 잘 안 먹어요.


식당에 가면 꼭 멜젓 고기옆에 올려놓잖아. 끓여 먹으라고.


그니까. 근데 난 멜젓은 그다지..



제주도 고짓집에는 꼭 따라오는 멜젓을 나는 잘 안 먹었다. 

우리 동네 옆 모슬포에는 자리가 많이 난다. 해마다 할머니는 모슬포항에서 

자리를 사고 와서 자리물회를 만들고 남은 걸로 자리젓을 만들었다. 자리는 가시가 세서 자리물회를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 육질이 단단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할머니는 자리를 굵은소금에 굽기도 했다. 비닐을 벗기지 않은 자리를 구우면 고소한 냄새가 났다. 


자리물회를 먹으면 여름이 시작됐다. 금방 한 밥에 자리젓을 놓고 먹으면 그것 또한 밥도둑이었다. 자리젓은 냄새가 강해서 먹고 나면 집 전체에 냄새가 남았다. 




집에서 저녁 먹고 근처에 맥주 마시러 갔다. 밖에서 먹는 건 강냉이도 맛있다






우리 엄마는 자리젓을 끓여서 줬어. 콩잎에 자리젓 너무 맛있는데.


예쁜 손톱의 언니가 말했다.


근데 우리 그때 왜 그렇게 싸웠지?

언니가 맨날 화냈잖아요

너도 만만치 않았거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자존심이지 뭐. 하나 쓸데없는.

그러니까..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은 공감에 있으면 부딪치기 마련이다.  말을 하다가도 틀어지고 술 마시다가도 싸웠다. 소주냐 맥주냐를 두고도 싸웠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나서 또 만났다.  나는 이 언니 말도 맞고 저 언니 말도 맞아서 이쪽에서는 이 쪽 얘기를 들었고 저쪽에서는 저쪽 얘기를 들었다.


언니들은 그렇게 싸우고 나서 또 내 욕을 하며 다시 친해졌다. 나는 언니들이 좋아서 그게 욕인지도 모르고 헤헤거렸다. 


언니랑 걷고 있는데 다른 언니가 찍어줬다. 누군가 내 뒷모습을 찍어준 게 언제인지. 기분이 좋았다



말은 이상한 성질이 있다. 


똑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의 말은 기분이 나쁜데 언니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니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옳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면 사는 게 편할 때가 있다.


그들이 먼저 열심히 길을 닦아놓아서 그냥 나는 가는 거다. 편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들 마음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나에 대한 선의? 사랑? 그런 비슷한 


감정이 있는 걸 알고 있다.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20년이 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언니들이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콩잎은 나오는 때가 있다. 하우스에서 사시사철 나오는 상추와 깻잎과는 달리  딱 이맘때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더 맛있는 건지도 모른다.


콩잎과 함께 먹는 밥은 보리밥이 좋다. 이왕이면 투박한 상 위에 무심하게 담아내는 게 좋다. 둥글고 꽃무늬가 화려한 스테인리스밥상이면 더 좋다. 먹으면 입이 얼얼해지는 청양고추를 옆에 두고 먹는다. 콩잎의 비린 맛을 잡아주는 단짝들이다.


콩잎에 자리젓인지 멜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젓갈을 선택하는지는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콩잎에 자리젓인데 넌 왜 멜젓이야? 가 아니라 아.. 그렇게도 먹는구나. 다음에 한번 먹어볼게.

이렇게 하면 말이 길게 이어진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것만으로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된다. 


가만히 언니들을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던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걸 궁금해하고 또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해 준다. 그래서 언니들을 만나면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많다고 위에서 내려보는 게 아니라 같은 높이에 나란히 서 있다



그때는 그걸 잘 몰랐다. 모르고 지나쳤는지 알면서도 외면했는지 알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20대 후반은 폭풍처럼 요동치는 시간들이었고, 그 안에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질 여유는 없었다. 그때 몰랐던 걸 알기까지 2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모르는 것들도 20년 후에는 알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하는 실수가 조금씩 줄어들기를 바란다. 나이테가 둘레를 넓혀가듯 마음도 넓어지길 바란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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