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Jun 03. 2024

다시 시작

쓰는 건 어렵지만, 쓰지 않는 건 더 힘들다. 열흘 정도 매일글쓰기가 멈췄다. 아들의 부상과 입원, 수술 때문이었다. 목요일에 퇴원했는데 4일 동안 글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쓸거리는 차고 넘쳤다. 다친 이야기, 병원에서의 에피소드, 올해 처음 먹은 팥빙수와 해마다 오르는 팥빙수가격 등등.


새벽 5시 기상은 변함없다. 눈이 절로 떠진다.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컴퓨터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는 건도 똑같다. 여느 때 같으면, 전날 SNS에 올렸던 글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생각했던 글을 썼을 것이다. 열흘 동안 SNS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핸드폰도 조용했다.


아무도 모른다. 브런치 연재글이지만, 강제성이 없다. 나만 외면하면 된다. 한 번 빠질 때는 못 견뎠는데, 두 번째부터는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 진이 빠진다. 쓴다고 해도 쓰지 않아도 달라지지 않는다. 


못 견디는 건 마음이다. 쓰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생각들이 차고 넘친다.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입원실 바닥에서 생활했는데, 어디가 잘못됐는지 의자에 삼십 분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허리를 펴려면 '아이고'소리가 먼저 나왔다. 쿨파스를 붙였다. 왼쪽 엉덩이에서 바깥허벅지로 전기가 통했다.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꼭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다음부터는 누워 있었다.


책 5권을 샀다. 두껍고, 어렵고, 재미있는 책들이다. 글 쓰는 것보다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무작정 쓰는 것보다 하나라도 알고 쓰고 싶었다. 누워서 책을 들고 읽었다. 목에 돌덩이가 올려졌다.


어렸을 때 편지를 많이 쓰고 받았다. 신작로에 나가 우체부아저씨를 기다렸다. 빨간 88 오토바이 뒷좌석에 빨간 가방을 달고, 눌러진 모자를 쓴 우체부아저씨가 커다란 가방을 뒤적거려서 편지를 꺼내고, 내 이름을 부른다. 얼른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뜯었다. 성질이 급한 나는 한 번도 두고 본 적이 없었다. 선물을 받아도 그 자리에서 뜯었다. 궁금한 걸 못 참는다.



매일 글쓰기는 못 하고 있지만, 메일은 확인한다. 받은 메일을 모두 지운 메일함은 텅 비어 있다. 내가 보낸 메일은 30통이 넘는데 아무도 답장을 하지 않는다. 지독한 짝사랑이다. 


선택해야 한다. 계속 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나는 쓰는 사람이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쓰는 자체를 즐긴다. 상을 받으면 좋고, 출간하면 더 좋지만, 답이 없다는 건 아직 멀었다는 말이다. 고민은 쓸 시간을 잡아먹을 뿐이다. 떨어진 거 인정하자. 징징대봤자 아무도 모른다. 인정하고 다시 쓰자. 이 정도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글을 쓰지 못했다. 반성먼저 하고 시작하자. 6월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