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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23. 2024

내 인생의 해답을 찾아서

도서관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 도서관에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산업도로 버스가 왔다. 시간만 잘 맞으면 그걸 타는 게 제일이었다. 산업도로 버스를 놓치면 15분 동안 걸어서 대합실에 갔다. 일주도로 버스는 40분에 한 대씩 지나다녔다.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간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다시 집에 온다. 토요일에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도서관에 갔고, 일요일에는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탔다. 빨리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었다. 도서관에 좋은 자리를 잡으면 뿌듯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도서관과 책을 좋아했다. 도서관 특유의 깊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좋았다. 아무리 시끄러운 사람도 도서관에 들어오면 저절로 입이 닫히고, 눈이 열린다. 나란히 서 있는 책장들에 가득 들어차 있는 책들만 봐도 배가 불렀다. 도서관에서 종일 살고 싶었다.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었다. 막연하게 꿈꾸기만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지금, 학교 도서관 봉사를 8년째 하고 있다. 큰아이를 따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2년째다. 아들과 막둥이가 왜 우리 학교에는 안 오냐고 볼 멘 소리를 말했다. 중학교 도서관 봉사가 더 재미있다. 


내 인생의 해답


매주 수요일마다 큰 딸이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 간다.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몰려오는 점심시간에 맞춰 대출과 반납 업무를 한다. 교통비도 준다. 안 할 이유가 없다. 

어제 도서관에 새로운 책이 들어왔다. 두꺼운 책이었다. 

"선생님도 궁금한 게 있으면 해 보세요. 재미로."

재미!!! 

보살집과 철학관에 다니며 꽉 막힌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타로, 쌀 점, 뭐든 좋아한다. 안 한지 오래됐다.     



사서 선생님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책 앞에 섰다내가 가장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떠올렸다그리고 물었다눈을 감고진지하게 생각했다그리고 페이지를 펼쳤는데.

"당신은 별로 관심이 없다."


내 인생의 해답


망치로 머리를 맞으면 이렇게 아플까헛웃음이 나왔다뭐지이 정확하게 심장을 찌르는 이 문장은?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학생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했다질문이 잘못됐나내가 관심이 없다고아닌데나 완전 관심 많은데그런데 정말 관심이 많은가



사랑을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만 집중한다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져드는 것이다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밥을 먹을 때도잠을 잘 때도만화책의 말풍선처럼 여기저기서 그 사람이 떠오른다작은 손짓에 웃고한마디 말에 상처받는다사랑을 하면 사람은 바보가 된다지금 내가 빠져든 건 뭘까?    



남편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머리에 뭐가 들어있길래 이러냐고무슨 생각을 하며 사냐고."

남편도 나만큼이나 내 머릿속이 궁금했나 보다. 그런데 저 안에 내 질문의 답이 보인다. 아주 조그맣게. 



<미움받을 용기>에 소설가를 꿈꾸지만, 소설을 쓰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소설을 쓰지 않으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는 소설을 쓸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자신은 없는데, 소설가는 되고 싶으니, 내가 지금은 소설을 쓰지 않지만, 언제든 쓰기만 하면 좋은 소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도피와 자기 최면의 늪에 빠진 꼴이다.     


점심을 먹고 온 학생들이 책 앞에 모여 있다. 친구를 대신해서 질문하고 페이지를 펼친다.

"**이는 남자친구가 생길까요?"

"**은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은 이번 시험을 잘 볼까요?"

지나가는 척하며, 아이들의 말을 엿듣는다. 질문도, 깔깔대며 웃는 것도 귀여웠다.


내 인생의 해답


점심시간이 끝나고 청소할 시간이다. 다시 한번 책 앞에 섰다. 내내 생각했던 질문을 떠올린다. 마음을 가다듬고, 손을 내밀어 책을 잡는다. 질문을 떠올린다. 천천히 질문을 되새긴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오롯이 질문만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책장을 펼친다.


"확실하다."

됐다. 그거면 됐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용기를 갖기 위해선 확신이 필요했다. 이제 됐다.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 생겨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책을 읽어도, 책에서 하는 말대로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때 책을 찾지만, 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래도 책을 읽는 건 책 속에서 나만큼이나 어지러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나 같은 사람은 있었다. 그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 걸으며, 위안을 삼는다. 



<내 인생의 해답>에서 만난 두 문장을 새겨놓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두고 볼 예정이다. 24년 마지막날에 질문을 적고, 책이 말해준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체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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