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가들의 에피소드를 보면 커피를 마시다 냅킨에, 담배를 피우다 담뱃갑에 글을 썼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아이디어란 번개 같아서 순간 반짝하고 사라진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게 관건이다. 잠자리에 수첩을 놓고, 꿈에서 깨자마자 받아 적듯 흘려 쓰거나 술 취한 깊은 밤 느닷없이 찾아온 영감에 몸서리치며 암호처럼 글을 쓴다. 예술이란 자고로 그런 것이다.
과연?
목적이 분명한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국어 시간에 배운 설득하는 글과 설명하는 글은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감동과 재미가 있는 글은 작정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절로 써지는 것인데 반해 분명한 목적이 있는 글은 쓰는 글이라 재미없었다.
진짜?
소설을 쓴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한 줄도 못 쓰고 앉아 있다 보니 문득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소설작법책을 30권 정도 읽었다. 어떤 책의 저자는 한 분야의 책을 30권 이상 읽고 책을 쓴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왜?
작법서를 읽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책을 읽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멋진 책들을 감상하기만 했다. 어떤 책도 너덜 해질 때까지 읽지 않았고, 한 권의 책이라도 그 안에서 하라는 대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마치 결석하지 않았는데 왜 성적이 안 나오냐고 따지는 꼴이다. 수업시간에 앉아만 있는다고 공부가 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집 막둥이도 안다. 선생님이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서 듣고 이해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예습과 복습을 강조하면서 정작 나는 흘려 읽기를 하고 있다.
사실은
겁이 난다. 하나도 못 쓸까 봐 무섭다. 소설을 쓴다는 건 허공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잡아내는 일이다. 그게 무언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가만있어보자. 나는 아직 손을 뻗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지난주 문방구에서 잘 써지는 볼펜과 얇고 예쁜 공책 세 권을 샀다. 오늘부터 내가 할 일은 공책 안에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의 뼈대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스토리를 짜고, 스토리에 맞는 인물의 특징을 꼼꼼하게 만들어야지. 뭐라도 잡으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이 글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글은 가만히 앉아 써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앉아 쓰는 것이다.
어제부터 감사일기대신 성공일기를 쓰기로 했다. <나는 오늘도 달린다>라는 책에서 이도영작가는 진정한 성공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공은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성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귀찮지만 방을 청소하고 하기 싫은 공부를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하면 성공이라는 말에 나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일기는 동기부여와 자존감을 높여준다. 하기 싫은 나를 이기고 뭔가를 한다. 해 낸다. 나를 이기고 멋진 내가 된다. 나의 정체성은 소설가이고, 나는 매일 글을 쓰는 성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