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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l 12. 2024

문득, 엄마, 그리움

어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단 제주모임이 있었다. 8명의 시민기자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두 명이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마치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수줍어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신입생과 그들을 뿌듯하게 때론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선배들.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고, 내가 하는 말이 말인지 밥인지 모른 채 세 시간이 흘렀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두꺼운 얼굴이다.


예전 같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버버벅거렸을 텐데 뻔뻔하게 전 잘 못 해요. 몰라요. 를 말한다.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었다. 모임에 가기 전에 다른 기자님들이 쓴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전문성 뿜뿜 돋는 글들을 읽으며 한없이 작아졌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 틈에 앉아 있어도 될까. 싶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제왕절개로 애 셋을 낳았다.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와 21년째 앞뒷집에 살고 있다. 친정은 난장판이다. 이 정도면 스펙으로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막 내질렀다.


맞은편에 조그맣고 부드러워 보이는 하얀 니트티의 작가님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몇 년 전에 제주에 내려와 나이 드신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으며, 어머니를 보며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어떤 질환으로 인해 일정 부분을 수행하지 못할 뿐 여전히 인간적인 노인들을 우리는 밥 먹고 누워만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주위를 둘러보면 요양원에 있는 분들이 많다. 코로나로 인해 보러 가지 못한 지 오래된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들의 하루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일 옆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딸이 있다면 어떨까? 


작가님은 집에서 죽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래전 우리 엄마도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살다 우리 옆 방에서 돌아가셨다. 죽음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었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어머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95세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작가님이 대답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손을 꼭 잡았다. 


-우당도서관에서 어머님 그림을 전시하고 있어요.


오늘 우당도서관로비에서 어제 작가님이 말한 어머님의 그림을 만났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동화책과 시집을 읽고, 책 한 편에 그려진 그림을 따라 그리는 어머님을 봤다. 어머님의 재능을 알아낸 언니가 좋은 색연필과 종이를 보내줬다는 작가님의 멘트에 웃음이 났다. 딸들과 함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95세의 할머니라니.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엄마는 환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젊고 예쁘다. 엄마가 할머니가 된 모습을 모른다. 그래서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엄마랑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우리 엄마의 꿈은 작가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노트에 뭔가를 끄적였다. 노래가사 때도 있고, 생각나는 시 한 편일 때도 있다. 가끔 엄마의 수첩을 훔쳐보며 엄마의 마음을 헤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나도 엄마옆에 꼭 붙어 앉아 자꾸 뭘 해보라고 보챘을 텐데. 아기처럼 작아진 엄마를 꼭 껴안으며 내가 지켜줄게. 우리 엄마. 하고 등을 토닥여주었을 텐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95세의 할머니가 그린 그림을 보며 울기만 한다.


내일은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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