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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16. 2024

어깨뼈, 한강의 자작시

노벨문학상의 나비효과


어깨뼈


             -한강-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당신을 만나기 전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소리였으면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나비효과가 제주에 사는 베짱이에게도 닿았다. 수상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쓴 글이 브런치에서 조회수가 폭발했다. 유튜브알고리즘에 한강이 계속 뜬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게 한강의 인터뷰와 방송자료들이 매일 업그레이드된다. 오래전에 블로그에 썼던 "작별하지 않는다"가 블로그인기글이 됐다. 그리고 나는 매일 한강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한강의 소설은 읽기 힘들었다. 사람의 깊은 곳 끝까지 내려가는 길이 어둡고 험하고 아파서 따라가는 것만으로 숨이 찼다. 그냥 대충 좀 살면 될 것을.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삶이 없다.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양초처럼 혹은 그 불빛 하나를 보고 뛰어드는 나방처럼 때로는 과격하고 때로는 너무 오래 참는다. 그래서 안타깝고 슬프다. 사람이 저렇게 진을 빼놓으면 어찌 사나 싶고, 힘든 걸 알면서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에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안쓰럽다. 한강의 소설을 읽으면 삼일은 앓아눕듯 마음이 슬프다.





고등학교 때 극장에서 "퐁네프의 연인들"이란 프랑스영화를 봤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이라 아무 생각 없이 본 건데, 보고 나서 오랫동안 힘들었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퐁네프의 연인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한강의 "희랍어수업"을 읽는 동안 잊고 살았던 영화가 생각났다. 그동안 나는 너무 편하게 살았다. 아픈 게 싫어서 외면하고 살았다. 깊이 파고들면 골치만 아프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어 몰라도 다 아는 척하며 들여다보지 않았다. 내 몸을 마음을 시간에 맡긴 채 물살에 흔들리는 부레옥잠이었다.






유튜브에서 "한강이 직접 낭독하는 자작시"를 봤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작고 나직해서 귀와 심장으로 듣는다. 그가 잠시 쉴 때면 함께 숨을 몰아쉬고, 그가 말을 건네면 안도의 숨을 몰래 내뱉는다. 그가 들려주는 시는 아름답고 슬펐다. 운동하며 아령을 번쩍 들어 올리기만 했던 어깨를 다시 본다. 내 어깨는 딱딱한가, 움츠러들었는가.




자신감 있는 표현을 할 때 우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또는 어깨를 으쓱한다라는 표현을 한다. 어깨뽕이라는 말도 있다. 반면 힘이 없고 풀이 죽었을 때는 어깨가 축 처져 있다고 한다. 어깨를 올리라는 말은 실망하지 말라는 말이다. 어깨에 짊어지다는 맡아서 책임을 진다라는 뜻이고 어깨를 짓누르다는 책임이나 의무 따위에 부담을 느낀다는 말이다. 어깨를 나란히 하다는 상대와 실력이 비슷하거나 나란히 걷는다는 뜻이고, 어깨를 으쓱하다는 뽐내는 태도를 나타낸다.



 어깨가 무거운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나 책임을 져서 마음의 부담이 큰 것이고, 어깨를 겨루는 건 비슷한 지위나 힘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어깨를 낮추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고, 어깨에 힘을 주면 거만하고 당당하는 의미라고 가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말로 돌려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고민거리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어깨를 두들겨 위로하고, 울 때는 어깨를 들먹인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제주에 사는 아무 연관 없는 사람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가끔 짜증 났던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한강의 시"를 알게 됐고, 그의 인터뷰를 보며, 그를 조금 알게 됐다. 어깨뼈라는 시를 블로그에 적으며, 어깨에 관한 표현을 정리했고, 하루가 시작하기 전 글을 올리며 내 어깨가 조금 올라갔으니, 나비의 날갯짓이 제주까지 닿은 건 분명한 일이다.




목소리가 크고, 강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홀로 거센 날갯질하며 살아가고 있을 어깨들과 나란히 걷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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