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루키의 팬이다.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샀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자잘한 일상을 그려내는 그의 글이 좋았다. 스파게티를 삶고, 세탁소에 하얀 와이셔츠를 맡기고, 청소를 하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에게 소설 같은 일이 펼쳐진다. 규칙이 분명하고, 취향이 확실하며, 자기 관리에 진심인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나와는 정반대여서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글 속에 나오는 음악을 찾아 듣고, 그가 말하는 자동차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의 취향은 하루키의 취향을 따라한 것이다.
1985년 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앞부분에 소파에 대한 주인공이 생각이 나온다. 어디를 가든 소파가 있다. 소파에 앉을 때마다 그 문장을 떠올린다.
나는 항상 소파를 선택하는 데에는 그 사람의 품위가 배어 나온다고 확신했다. 소파란 것은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확고한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건 좋은 소파에 앉아서 성장한 자만이 알 수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며 성장하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며 성장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좋은 소파는 또 하나의 좋은 소파를 낳고, 하나의 나쁜 소파는 또 다른 하나의 나쁜 소파를 낳는다. 나는 고급 차를 굴리면서도 집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소파를 놔두고 사는 사람을 몇 명인가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자들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비싼 차에는 마땅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테지만, 그것은 단지 비싼 차일뿐이다.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소파를 사기 위해선 그 나름의 식견과 경험과 철학이 필요하다. 돈이 들지만, 돈만 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자신의 확고한 이미지 없이 훌륭한 소파를 손에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P.68
어제 소파를 샀다. 살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저녁이 되자 걱정이 밀려왔다. 감당할 수 있을까? 금방 더러워지면 어쩌지? 청소를 매일 해도 때가 탈 텐데.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아이들이 먹다가 흘리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하얀 소파를 샀다.
결혼하면서 내가 선택한 소파는 진한 갈색의 통가죽소파였다. 앉는 순간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좋은 소파라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안락하면서도 단단하고, 몸이 쑥 들어가면서 소파와 하나 되는 기분이었다. 손님들도 소파를 칭찬했다. 15년 만에 그 소파는 유명을 달리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앉아도 소파는 거지 거나 가죽의 손상이 없었는데, 문제는 막둥이였다. 기저귀를 떼자 막둥이는 소파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파에서 못 내려온 줄 알았다. 호되게 혼내고 걸레를 들고, 닦아냈다. 막둥이는 엄마가 화를 내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소파 등을 손으로 잡고 오줌을 쌌다. 가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닦아도 등과 바닥사이에 뭔가 남아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쉽지만 소파를 버리기로 했다.
익숙한 소파가 없으니 불편했다. 소파의 높이에 맞춰 설치한 티브이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했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서려면 무릎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안방에 들어가긴 애매하고, 거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싶을 때 소파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이 나보다 불편했는지 소파를 사자고 했다. 전적으로 남편의 카드에 의존하는 나는 오빠, 괜찮겠어?라는 말로 경제적 부담을 걱정하는 말을 먼저 했다. 남편은 너무 비싸지 않은 걸로 적당한 것을 사자고 했다.
매장에 진열된 많은 물건들 중에 적당한 것은 싼 것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 앉아서 좋은 것들은 모두 비쌌다. 사장님이 기획상품으로 나왔다는 4인용 인조가죽소파를 샀다. 적당한 가격이었다.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80킬로가 넘는 남편은 소파의 오른쪽에만 앉는다. 남편이 발을 뻗고 누워 있는 옆으로 나와 아이들이 앉는다. 남편이 앉는 자리만 꺼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남편이 소파밑으로 툭 떨어질 것만 같았다. 불안했다. 한 곳에만 앉지 말고, 왼쪽에도 앉으라고 해봐도 요지부동이었다. 남편이 불안감을 느끼며 소파를 바꿔야겠다고 말한 게 올여름이었다. 아들과 장난치다 손으로 소파를 잡아당겼는데, 종이처럼 가죽이 쭉 찢어졌다. 싼 게 비지떡이었다.
두 달만 있으면, 1년짜리 적금을 탄다. 그 돈으로 소파를 바꾸자고 했더니 남편의 얼굴이 펴졌다. 막둥이친구네 가구점에 가서 소파를 구경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좋은 소파는 비쌌다. 매장진열상품은 50~70%라는 말에 혹한 우리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고, 두 개로 후보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나는 단단하고 예쁜 가죽소파였고, 하나는 양쪽에 리클라이너기능이 있는 폭신한 기능성천소파였다. 가격은 비슷했다. 남편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가죽소파는 때가 잘 타지 않을 것 같고, 크기가 커서 5명이 앉아도 충분했다. 천소파는 관리하기 까다롭고, 리클라이너가 고장 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고급스럽고 예뻤다. 전체적으로 갈색톤인 우리 집에 놓으면 거실이 환해질 것 같았다. 지금까지 갈색과 검은색 소파를 써서 전혀 다른 색에 끌리기도 했다.
나는 하얀 소파를 샀다. 살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집에 오는 순간부터 걱정이 됐다. 배달오기 전에 전화해서 가죽소파로 변경할까 말까 고민했다. 한 번쯤은 예쁜 소파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현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지식인에게 하얀 소파 청소법을 묻고, 후기를 읽었다. 잘할 수 있을까? 와 보기만 해도 좋으니 괜찮다는 마음이 충돌했다. 하루키라면 뭘 선택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좋은 소파는 또 다른 좋은 소파를 낳는다는데, 어쩌지? 고민하든 말든 이제 곧 날이 밝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소파는 거실에 들어온다. 부디 생각보다 때가 덜 타길. 22년이 넘은 우리 집 거실에서 거실창의 하얀 커튼과 하얀 책장과 잘 어우러져 혼자 동떨어지지 않기를. 오래된 집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