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여름 태양과 비를 맞고 견딘 열매들이 여물어 떨어진다. 벼는 익어 고개를 숙이고, 들판은 수확하는 사람들도 북적인다.
아이들에게도 11월은 일 년 내내 연습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달이라 바쁘다. 덩달아 나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10월 31일 목요일에 큰딸과 아들의 바이올린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매주 토요일 5시 30분에서 7시 30분 동안 바이올린 앙상블에서 연습하고, 아이들이 돌아가면, 선생님께 개인레슨을 받았다.
큰 딸은 토요일 오전에 학교 바이올린 동아리에서 1시간 30분 동안 연습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총 4시간 30분 동안 바이올린을 잡고 있다. 중간에 수학학원에 갔다 오면 토요일하루가 꽉 찬다. 누군가 바이올린 전공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가 그냥 바이올린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악기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나는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게 좋다. 집에서 놀 때도 셋이 모여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곡을 연주하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다. 살아가는 동안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으로 위로받고, 음악에서 힘을 얻길 바란다.
11월 3일 일요일에는 제주전국국악경연대회에 참석했다. 아들과 막둥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토요일에 풍물동아리와 오케스트라동아리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몇 년째 풍물동아리활동을 하고 있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인데, 대회가 가까우면 11시 40분으로 연습시간이 늘어난다. 아들은 난타를 막둥이는 장구를 친다. 얼마나 연습했는지, 아들의 손바닥은 물집투성이다. 둘은 차 안에서도 입으로 풍물연주를 한다. 서로 상쇠도 되고, 북도 치면서 가상연주를 한다.
아이들의 풍물연주를 들으면 답답했던 가슴이 풀린다. 40명의 아이들이 모여 하나가 되는 순간은 짜릿하고 소름이 끼친다.
11월 9일 토요일에는 전도학생민속예술경연대회가 탑동에서 열렸다. 제주도 전역에서 참가한 학교들의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 눈에는 우리 아이들이 제일 잘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실망할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쿨하게 인정하며 다음번에는 꼭 우승하자고 다짐했다. 엄마보다 마음이 훨씬 강하고 넓은 아이들이다.
아들은 토요일에 과학영재수업을 받는데, 시간이 풍물과 겹친다. 가끔 영재수업이 없으면 동생과 함께 풍물연습하러 간다. 11월 9일은 과학영재수업이 있어서 대회참석이 불가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절대 안 된다고 팔짝 뛰었다. 풍물대회에 꼭 가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해서 영재반에 결석계를 제출했다.
아들이 난타를 치는데, 눈물이 났다. 과학대회 때, 바이올린연주회 때에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 나왔다. 음악을 온몸으로 즐기며, 신나게 북을 두들기는 아들은 자유 그 자체였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엄마는 공부를 선택했나 싶어 미안했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단다.
모든 공식일정이 끝났다. 나는 감기에 걸렸고, 아들은 입술에 열독이 펴서 부풀어 올랐다. 막둥이는 밥을 두 공기 먹더니 곯아떨어졌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단한 몸을 추스르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학교풍물반은 대회의 감동을 뒤로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연습할 것이다. 바이올린 앙상블에서는 25년 신년음악회를 위해 새로운 곡을 연습한다. 24년의 결실을 맺고, 25년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묵묵히 혼자만의 매듭을 맺으며 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