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철저한 반성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입니다

by 레마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끄러움에 반성문을 씁니다


아무도 모르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세수하다 손톱에 긁힌 볼이 따갑습니다


문을 닫는데 손가락하나가 끼었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피하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부딪쳤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리가 멍해집니다



얼굴이 타오릅니다.


스스로 만든 착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넋을 놓고 앉아 있는 꼴이라니



혼자 하는 일에 비밀이 있을까요?


저만 안다 했는데


마음이 들끓는 걸 보니


제 안에 수백 명이 살고 있나 봅니다



한 것보다 더 한 것을 바라는 욕심과


이 정도면 됐다는 자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똥이고 먼지고 안개고 바람이며 당신 앞에서 기꺼이 쓰러질 고목입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나는 웃고 있나요?


멋진 포즈를 취하며 한없이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있겠죠


웃으면 웃고 울면 달래주지요


당신이 그럴 때마다 속에서 올라와요


잠깐만요.


일부러 알려고 하지 마세요.


매너 있게 물을 내리는 이유를 굳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어떨 때 죽을 것만큼 숨이 막히는지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고 싶어서 근질거리는데


당신은 자꾸 옷을 입으라고 하네요


당신이 건네주는 주름 하나 없는 옷




비 오는 해변에서 옷 따위는 개나 줘버리세요


나는 그저 뛰어다닐 뿐이에요. 숨이 차올라도


가슴이 터져 죽으면 그뿐.


당신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면


나는 웃겨서 죽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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