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글쓰기 No.5
치약이 왼쪽 엄지발가락 위에 떨어졌다. 악소리가 절로 나왔다. 127g의 반쯤 남은 치약이 돌덩이처럼 발가락을 눌렀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변기에 걸터앉아 발가락을 본다. 긁힌 상처 하나 없다. 그런데 아프다. 지독한 아픔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화장실 냉기가 올라와 팔에 소름이 돋았다. 변기에서 일어나 발을 내딛자마자 다시 앉았다. 몇 번 팔을 문지르다 일어섰다. 반쯤 남은 치약이 남긴 고통을 안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안방 화장실을 나와 이불을 걷었다. 종일 이불을 깔아놓은 방바닥은 뜨끈했다. 발을 집어넣었다. 여전히 아팠지만 살 것도 같았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날이면 장판이 벌게졌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검고 무거운 솥을 올리고 물을 끓였다. 60초 백열등 아래서 눈물을 흘려가며 불을 땠다. 아궁이의 불은 자꾸 밖으로 나오려 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부지깽이로 불을 쑤셔 넣었다. 안으로 들어간 불은 방바닥을 데웠고, 데워진 바닥에 나는 배를 깔고 누웠다.
어머니는 배가 자꾸 아픈 게 배설이 더러워서 그렇다고 했다. 웬만하면 넘어갈 일에도 꼬치꼬치 따져가며 말대꾸하는 큰 딸이 어머니는 어려웠다. 둘러앉아 먹는 밥상에서 제 밥그릇을 들고 앉아 있는 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름에도 곤로에 물을 데워 머리를 감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저 아이가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겠구나 생각했다.
성질을 죽여야 산다고 했다. 지 성질대로 살면 배알이 꼴려 너만 힘들다고 제발 그냥 좀 넘어가며 살라고 어머니는 흰 죽을 내밀며 말했다. 길가에 붙은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느라 진이 빠졌다고 했더니 먹어야 힘이 난다고 했다. 빨간 꽃이 그려진 은색 스테인리스 밥상에는 흰 죽과 간장 종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씻을 물을 데우면서 내가 먹을 죽을 쒔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물과 쌀로만 끓이는 흰 죽은 생각보다 손이 가는 음식이다. 쌀이 끓어오르며 방울이 퐁퐁 생기기 시작하면, 계속 저어줘야 한다. 급하다고 센 불에 하면 쌀과 물이 따로 놀고, 불에 올려놓고 무심하며 금세 바닥에 눌어붙는다. 들여다보며 천천히 쉬지 않고 저어야 폴폴 익는다. 너무 묽지도 되지도 않은 흰 죽에 간장 반숟가락을 뿌리고 후후 불어 먹었다. 더운 바닥에서도 배만 차가웠는데 먹고 나면 온기가 손끝까지 퍼졌다. 몸이 노곤해지고 꼬였던 배설이 풀리면서 잠이 왔다. 어머니가 이불을 정돈하는 동안 오줌을 싸고 왔다.
힘이 들 때마다 이불 속에 들어가 웅크렸다. 어머니가 그리워도 이불을 덮고 누웠다. 바닥에 배를 깔고 두꺼운 이불을 몸 위에 올렸다. 천천히 숨을 쉬었다. 견디며 살다 보면 살아질 날이 온다고 하길래 믿었다. 뭐든 때가 있다던데 지금은 참을 때인가 싶어도 이불을 꺼냈다. 이불을 세 개 겹쳐 덮으며 몸을 누르는 무게가 이불 때문이라고 믿었다. 언제든 이불을 걷고 일어나면 된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하면 된다. 해야 한다.
왼쪽 엄지발가락의 발톱 끝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콕콕콕 쑤시다 잠깐 쉬고 다시 콕콕콕. 작고 단단한 누군가 엄지발가락에 올라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반응을 살피며 딱 견딜만한 통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발가락의 통증이 증거다. 화장대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이불속에 있던 발을 꺼내자 발목에 선뜻하게 바람이 들었다. 바닥은 뜨겁고 공기는 차가우니 비염이 심한 거라고 남편은 말했는데,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그런 말은 담배를 끊고 술을 줄여야 오래 삽니다라는 말과 같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남편은 입술을 오므리며 침을 묻혔다.
사족 : 내일 쓸거리가 있으면 잠자리에 들면서 히죽거립니다. 어젯밤은 아무리 생각해도 쓸 게 없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얼마 전에 쓰기 시작한 소설의 앞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이래서 저축을 하는 건가봅니다. 예전에 썼던 글들이 있으니 가끔 서랍안 글 찬스를 쓰겠습니다. 쓰려고 보니 고칠 게 눈에 들어봅니다. 글을 다듬어서 발행을 누르면 오늘도 성공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