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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쵸를 만났다

어떤 한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하는 편입니다

by 레마누


-혹시 oo 아닌가요?



나이가 들어서 어렸을 때 동창들을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날 때가 있다. 기억보다 키가 커졌거나 몸이 조금 불어 있을 수 있다. 머리모양과 화장으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말투에서 웃는 얼굴에서 예전 모습들이 되살아난다. 그럴 때 던지는 한마디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얼굴에 주름이 몇 개 생기고, 흰머리가 난 생기 잃은 머리카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친구라고 생각하는 순간 열다섯이 된다. 순식간에.



아들 수영강습을 하러 갔다가 중학교동창을 만났다. 30년쯤 된 것 같은데 정말 하나도 안 변했다. 아니다. 변한 게 있긴 했다.



친구의 이름보다 별명이 먼저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의 별명은 "칸쵸"였다. 과자이름 "칸쵸"처럼 귀여운 이미지는 아니었다. 깐쵸는 까불래기의 줄임말이었다. 촐람생이보다는 친근한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깐쵸는 우리 반에서 꼴등을 도맡아 하는 아이였다. 담임이자 사회선생님은 힘이 넘치는 서른 살 남짓한 유부녀였는데 숙제검사를 하고 안 해 온 사람에게는 손바닥을 때렸다.



처음 5대부터 시작해서 숙제를 해 올 때까지 5대씩 올라갔다. 사회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 있었는데 깐쵸는 한 번도 숙제를 해 온 적이 없었다. 나중에 50대가 되었을 때 사회선생님은 힘이 빠진 것 같았다. 반면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오른 깐쵸는 끄떡없었다.



-깐쵸야. 그냥 숙제해. 내 거 보고 그냥 쓰면 돼


-내부러. 안하잰



깐쵸는 못 한 게 아니라 숙제를 안 한 거였다.



수업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을 치며 겨우겨우 버티던 깐쵸가 제일 신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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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쵸가 도시락통을 꺼내면 덩달아 우리들도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깐쵸의 도시락은 우리 거와 확연히 달랐다.


일단 크기부터 차원이 달랐다. 깐쵸는 엄마가 밭에 가져가는 찬합에 밥을 한가득 담고 온다. 그리고 커다란 유리고추장통에 파김치를 가득 가지고 왔다. 깐쵸가 고추장뚜껑을 열면 교실에 파김치냄새가 진동을 했다. 깐쵸는 언제나 밥을 많이 먹었고, 반 아이들은 모두 깐쵸의 파김치를 먹었다.



깐쵸의 도시락에는 햄이나 소시지가 없었다. 마늘종장아찌, 마늘장아찌, 오이와 당근과 막된장, 어떨 때는 포기채 배추김치를 가져오기도 했다. 깐쵸의 가방 안에는 책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가끔 깐초네 집에 책이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궁금했다.



일 년 내내 깐쵸의 도시락 덕분에 배가 불렀다. 깐초와 3학년 때 다른 반이 되자 진심으로 아쉬웠다


30년이 지나 만난 깐쵸는 여전히 말이 많고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순한 얼굴이었다. 아들이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라며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순간 중학교 때 책상 위로 날아다니던 깐쵸가 떠올랐다.



다음에 보자.라는 뻔한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난 후 저녁에 오랜만에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깐쵸를 만났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는 깐쵸와 쌍꺼풀모임을 하고 있다. 친구는 웃으며 깐쵸가 대학교수와 결혼을 해서 우아하게 산다는 말을 했다. 깐쵸와 대학교수라니. 어, 그래서 계속 학교얘기랑 영어과외애기만 했구나. 난 깐쵸랑 파김치랑 마늘종 장아찌 담그는 방법 등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문득 점심시간종이 울리자마자 젓가락 들고 깐쵸를 에워쌌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누가 햄이라도 싸고 오면 괜히 신났던 그때. 작은 것에도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낙엽도 우리가 무서워 쉽게 떨어지지 못했던 열다섯.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별명대신 예쁜 이름을 불러줬지만 사실 깐쵸라고 부르고 싶었다. 깐쵸. 만나서 반가워.. 아이들은 숙제 잘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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