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나를 버릴 수도 있다.
5월 25일 지담작가님의 유튜브라이브 스트리밍을 보고 들은 내용과 제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는 지담작가님이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동참만으로도 사고의 확장이 이뤄지는 신기한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경쟁과 목표를 주제로 지담작가님이 말씀을 나눠주셨다. 다른 작가의 글을 읽으면 기가 죽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봤을 상황이고, 공감 가는 마음이라 집중해서 들었다.
남과 경쟁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라.
이왕 경쟁할 거면 죽은 성현과 경쟁하라.
(레마누 생각)
글을 쓰다 보면 막힐 때가 있다. 기를 쓰고 나가도 나가지 않으면 걷거나 책을 읽는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으면 막혔던 부분이 뚫리기도 한다. 그러다 비슷한 주제로 기가 막히게 쓰인 글을 발견하면 좌절감에 빠진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는데 하며 안타까워한다.
안타까운 마음은 나는 왜 이렇게 못 쓸까. 하는 자책으로 이어지고, 잔뜩 기가 죽은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미운 5살 아이처럼 자꾸 투정을 부린다. 분명한 건 내가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다. 최소한 후진은 하지 않는다. 그걸로 됐다. 다른 사람이 뭘 어떻게 하든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세운 목표가 있고, 내가 가는 길이 있다.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
목표에 대하여
목표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목표란 세상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선물은 받은 사람이 주인이다. 느낌이 온다. 내가 해야 하는 의무가 된다. 미친 듯이 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한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온 것이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건 아예 마음에 없는 것이다. 하고 싶다는 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없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목표가 왔다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능력이 부족하다. 부족한 나. 작은 나를 목표가 키운다. 격려하고 독려하며 목표가 나를 키우지만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목표는 나를 버린다. 세상에 꼭 필요한 목표는 나에게만 온 것이 아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표를 줬다. 목표가 근성을 보고 선택한 것이다. 목표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가면 목표도 힘들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가면 목표는 나에게 잘해주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남은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목표에도 목표가 있는데, 나만 남으면 목표가 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가면 목표가 나에게 온다. 목표가 나를 선택한다.
"여기서 글쓰기에 나보다 미친 사람 없을걸요?" 작가님이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모니터로 보고 있는데 움찔했다. 작가님처럼 매일 새벽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안 되냐고 나는 왜 안 되냐고 징징됐다. 그런 나에게 작가님이 말한다. "나처럼 해 봤어?"
(레마누 생각)
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발은 움직임이 다르다. 목적지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한 눈을 팔지 않는다. 갈 곳만 보고 간다. 반면 목적지가 없는 사람은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고, 길가에 핀 꽃사진도 찍고, 골목길로 돌아서도 간다. 어딘가 닿으면 좋고, 또 가다 돌아와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천히 걷는다. 발길이 닿는 대로 가며 보고 듣고 느끼며 걷다 문득 여긴 어디지? 하며 정신을 차린다.
나는 지금까지 목표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소설가가 된다.라는 목표가 그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장래희망에 적어놓은 이후 목표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되도록 나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 간절히 원했지만, 소설가라는 목표는 내게 오지 않았다.
아니다. 목표가 몇 번이나 문을 두들겼다. 나는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고, 목표를 받았다. 다만, 그것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소설가가 목표였으면서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목표가 찾아왔는데, 소설을 쓰지 않으니 목표가 나를 버렸다.
헤어진 연인처럼 애절하게 매달렸다. 이번에는 잘할게. 정말이야. 한 번만 봐줘. 마음 약한 목표가 정말이지? 하고 물었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목표가 다시 나에게 왔다. 그렇지만 나를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목표 앞에서 큰소리를 치긴 했는데, 글을 쓰려고 앉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악마의 속삭임이 되었다. 나는 번번이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고, 목표는 실망해서 떠나고, 후회하고, 다시 빌고, 용서받고, 다시 목표를 세우고, 무한반복이다.
관성처럼 입으로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면서 눈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앉아 있는데 목표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번에는 진짜다. 그동안의 정이 있어 떠나지 못했는데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 이번에도 못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 그러고보니 목표도 참 오래 참긴 참았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와 눈빛에 버럭 겁이 났다. 목표는 내게 똑바로 하지 않으면 절교를 선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목표는 내가 부를 때마다 올 줄 알았는데, 이제 안 온다고 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느낌으로 알았다. 이번에는 진짜다.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 뭘 어떻게? 목표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야 한다. 설렁설렁하는 건 눈에 안 찰 게 뻔하다.
안 그러면 목표가 나를 버린다. 목표를 세우고 이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목표가 나를 떠난다. 목표는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일정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 힘들고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과정은 견딜 자신이 없으면서 목표만 이루겠다는 심보를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목표를 위해선 견뎌야 한다.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