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을 출간하고, 첫 책을 받은 지 이틀이 지났다.
교보문고에 등록된 책이 신기해서 몇 번 들어가서 보고 또 봤다. 오전에 절임배추 10 포기를 사 왔다. 시장에서 양념을 사고, 참쌀풀을 써서 김치양념을 만들고, 저녁에 배추를 버무렸다. 혼자 히죽대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붕붕 떠다닐 것 같았다.
어제 따끈따끈한 새 책이 도착했다. '따끈한 신간'이라는 식상한 말을 쓰는 건 그것밖에 쓸 말이 없기 때문이다. 호호 불어 먼지를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처럼 건드리면 바스러질세라 조심조심 다뤘다.
막연하게 생각했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나오면 어떨까 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직접 쓴 원고를 가지고 전국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처음 받아봤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라 혼자만의 책을 갖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바람 불면 막아줄 다른 나무들이 필요했다. 나는 홀로 설 자신이 없으면서 혼자 있고 싶어 했다. 괴리감이 컸기에 돌아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끔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친구들 중에 나는 두 번째로 결혼이 늦었다. 이십 대를 내내 친구들 결혼식을 쫓아다니는데 썼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막차에 올라타듯 결혼했다. 막차는 불안감을 전제하고 안도감을 불러온다.
결혼하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줄 알았던 출산도 나에게는 힘들 일이었다. 7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나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 같았다. 공들이고, 기도하고, 나를 낮추며 살았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사이 하느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 좌절하고 절망했고 포기하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쉬운 것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돌아가는 사람이었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빠르게 가려고 했지만,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걸음이 느린 사람이었다. 빠른 줄 알았는데 한없이 느린 사람이었다. 그걸 모르고 헤매었고, 낑낑 앓다가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일단,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출간한 지 이틀이 지났다.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남편과 싸우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겹살을 구웠다. 기름이 자글자글한 프라이팬에 묵은 지를 넣고 볶았다. 며칠 전에 만든 깍두기가 맛나게 익었다. 오목한 접시에 담아내었다. 김치를 하다 남은 양념에 무를 무치면 금세 깍두기가 된다. 하나도 어렵지 않다.
양념이 많이 남아서 아침에 쪽파를 샀다. 씻어서 물기를 빼고, 멸치액젓으로 30분가량 절였다가 양념을 무쳤다. 몹시 화가 났기에 손은 빨랐다. 아주 맛있는 김치가 완성됐다. 출간하고 이틀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편안하다.
바닷가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다.
밀려오는 파도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나가길 반복했다.
어떤 날은 피하지 않고 발이 젖는 걸 지켜만 봤다.
사람들은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바닷속에 가라앉으면 어쩌지? 겁이 났다.
바다를 건너려면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바다가 두려웠다.
그렇게 늘 맴돌며 살았다. 바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았다. 사람들은 진이 빠지게 실컷 놀더니만 하나둘씩 짐을 챙겨 나가는데, 갈 곳 없는 나는 앉아서 바다만 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속으로 들어갈 결심이 섰다. 그때는 하늘도 산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저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결심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바다는 깊고 고요하고 편안했다 요동치는 가슴도, 빨간 얼굴도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살아온 것처럼 익숙했다.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나는 육지에 사는 물고기였다.
교보문고와 예스 24에서 <당신의 안녕> 주문이 가능합니다. 글을 쓰면서도 몹시 부끄럽습니다만 <당신의 안녕>의 엄마로서 저는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는 금세 알아차립니다.
엄마가 믿고 기다리면 아이는 마음껏 제 꿈을 펼칩니다.
정성껏 키운 아이를 밖에 내놓습니다.
만일 제가 잘 키웠다면, 아이도 잘 되겠지요.
작가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이 아이가 제 아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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