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게임 - 오정희

by 레마누

꼭 내장까지 들여다보이는 것 같잖아. 밥물이 끓어 넘친 자국을 처음에는 젖은 행주로, 다음에는 마른행주로 꼼꼼히 문지르며 나는 새삼 마루와 부엌을 훤히 튼, 소위 입식 구조라는 것을 원망하는 시늉으로 등을 보이는 불안을 무마하려 애썼다. 그래도 가스레인지 주변의, 점점이 뿌려진 몇 점의 얼룩은 여전히 희미한 자국으로 남았다. 아마 지난겨울 아버지가 약을 끓이다가 부주의로 흘린 자국일 것이다. 승검초의 뿌리와 비단개구리, 검은콩과 두꺼비 기름을 넣고 불 위에 얹어 갈색의 거품이 끓어오를 즈음 꿀을 넣고 천천히 휘저어 검은 묵처럼 만든 그것을 겨우내 장복하며, 아버지는 피가 맑아지고 변비가 없어진다고 말했었다. 내의 바람으로 군용 항고에 콜타르처럼 꺼멓게 엉기는 액체를 긴 나무젓가락으로 휘젓고 있는 아버지는 영락없는 중세의 연금술사였다.




소설창작수업을 받을 때의 일이다. 의욕만으로 소설을 제출했다. 나름대로 잘 썼다고 생각하며, 합평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교수님은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점을 물었고,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소설도 에세이도 아닙니다. 그냥 술술 읽히는 글이지요.

퍽!!!

무방비상태에서 한 대 맞아 비틀거렸다.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말들이 쏟아졌다. 나의 첫 번째 소설이 독자를 가장한 냉혹한 암살자들에 의해 찢기고 있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쯤 교수님이 동아줄을 내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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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저녁의 게임>이라는 소설을 한 번 읽어보세요.

평범한 저녁이 어떻게 소설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전업주부인 내가 처음 쓴 소설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라는 것으로 시작됐다. 익숙하고 잘 알고 있는 것이라 술술 썼다. 소설인지 에세인지 모른다는 것은 글 안에 내가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소설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데, 빈약한 배경에서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1.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가?

2. '왜'인물은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3.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4. '어디'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5. '언제'일어나는 이야기인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면 빨리 이 중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주 1)



첫 문장을 읽고


꼭 내장까지 들여다보이는 것 같잖아라는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 화자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비밀이 있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마루와 부엌이 훤히 보이는 것이 불안하다는 것은 뭔가 숨겨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밥물이 끓어 넘친 자국을 처음에는 젖은 행주로, 다음에는 마른행주로 꼼꼼히 문지르는 것이 화자의 성격을 말해주는 걸까?

아버지는 민간요법을 신봉하는 사람인가? 비단개구리와 두꺼비를 넣고 약을 만들다니. 왠지 아버지는 자신만 아는 사람일 것 같다.


(주 1)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데이먼 나이트,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