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이 비와 함께
장마가 시작됐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비가 내리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 <바빌론의 탑>을 읽고 있어서 그런가 하늘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비 오는 날 하고 싶은 것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기. 어렸을 때부터 사람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버스정류장이나 터미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일까? 왜 얼굴을 찡그리며 걸을까? 저 커플은 사귄 지 오래됐나? 상상하는 게 좋았다.
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것도 잊은 채 한참 앉아 있던 적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손 흔들며 인사하고 멋진 남자가 지나가면 무슨 과일까?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지금도 나는 사람구경하는 게 좋다. 카페 안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사람들의 우산을 구경하고 싶다.
비 오는 날 먹고 싶은 것
꿉꿉한 막걸릿집에서 금방 지진 모둠전에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비 오는 날 소주를 마시면 빨리 취한다. 빗소리에 이미 말랑해진 가슴에 소주는 쥐약이다. 골뱅이무침도 좋겠다. 아니다 그래도 비 오는 날은 해물파전이다.
적당히 마시고 알딸해진 기분으로 술집 문을 나서면 생각보다 추워서 몸을 바르르 떨게 된다. 우산을 탁탁 털어서 활짝 펼치고 익숙한 곳 즐거운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 약간의 일탈이 주는 아련함을 안고서
정작 비 오는 날 하는 건
하루 종일 몸이 뽀사지는 기분이다. 어제부터 코끼리다리처럼 무거운 다리를 폼룰러로 굴려도 보고 벽에 세워서 스트레칭도 해 본다. 언제부턴가 몸이 일기예보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밥 먹고 아이들과 <귀멸의 칼날> 영화를 보다 코르릉 코 골며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영화에 빠져 울고 있는데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들을 자장가처럼 들으면 소파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잤다.
비가 오는 일요일에도 삼시 세 끼는 먹는다
아침밥을 먹은 지 5시간이 지나자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아빠와 큰 딸이 짬뽕을 외치자 아들과 막둥이가 떡볶이로 맞받아쳤다. 큰 딸과 막둥이가 대표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큰 딸이 세 번 연속 이겼다. 아무리 막둥이가 예뻐도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비 오는 날 일요일 점심으로 해물짬뽕 와 탕수육세트와 짜장곱빼기를 시켰다.
사진을 찍기 전에 막둥이가 탕수육 6개를 비닐 살짝 걷어서 빼먹었다.
사족
어렸을 때 우리는 2주일에 한번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젊고 예쁘고 힘이 센 엄마가 할머니와 딸 셋을 데리고 여탕에 들어갔고 아빠는 혼자 남탕에 갔다. 엄마는 딸 셋의 때를 다 밀어주고 할머니등까지 밀었다. 엄마의 손은 거칠고 많이 아팠다. 금방 산 때수건은 살가죽을 다 벗길 것만 같았고 때는 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왔다.
못 견디게 아파서 몸을 움츠리면 엄마가 등짝을 한 대 때렸는데 그게 때수건보다 더 아팠다. 때를 밀고 온탕에 들어가면 온몸이 쓰렸다. 목욕탕에서 나오면 1킬로는 빠져 있었다. 아빠가 서 있던 자리에는 담배꽁초가 많았다.
얼굴이 빨갛고 젖은 머리를 한 6명이 목욕탕을 나와서 가는 곳은 시내에 있는 짜장면집이다. 한 그릇에 800 원하는 짜장면을 시킨다. 탕수육도 먹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짬뽕도 안 된다. 오로지 짜장면이다. 그때 먹었던 짜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한참 후에 엄마가 말했다. 나 사실 짜장보다 짬뽕을 좋아해. 나도 짬뽕이 더 좋은데. 엄마는 짬뽕을 먹겠다는 소리를 못했고, 나중에 딸과 중국집에 가서야 짬뽕을 먹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빠와 중국집에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아빠는 그러냐고 몰랐다고 했다.
결혼하고 산다고 해도 상대를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남편은 서로를 얼마나 알고 이해하며 살고 있을까? 혹은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비가 오고 낮잠도 늘어지게 잤고 얼큰한 짬뽕국물에 밥도 말아먹고 부엌도 깨끗하게 치우고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쏟아진다.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