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된 일기장을 읽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자다가 어느 순간 깨어버린 밤 2시 45분을 확인하고 오줌 싸고 누웠는데 할 일 없는 밤 두 아이의 숨소리가 양쪽에서 들리고 이불을 들썩일 때마다 공기청정기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밤. 낮에 동생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후회되는 밤 이십 년 전 애인이 또렷이 생각나는 밤 어제 먹은 저녁이 뭐였는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밤 오줌을 두 번 싸고 물 한 모금을 마셔도 십 분이 채 안 걸리는 밤 죽은 엄마 생각이 났다가 어제 본 좀비 영화가 떠오르는 밤 눈 감으면 뱀대가리가 창문을 넘어오는 밤 눈을 뜨면 밖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밤. 자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가만히 있는 밤 아이의 힘찬 맥박의 움직임에 덩달아 춤추는 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밤 태국에서 코끼리를 타고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먹어도 십 분이 걸리지 않는 밤 내일부터는 밥을 먹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밤 밤밤밤. 이럴 바엔 일어나자 하면서도 핸드폰 웹툰을 보다 손에서 미끄러져 이마가 아픈 밤
책장 정리를 하다 4년 전 일기장이 보였습니다. 들춰만 볼 생각이었는데 주저앉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기장에 쓰인 내용이 비슷한 걸 보면 저는 정말이지 변함이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도 여전합니다. 어젯밤 2시 30분에 일어나 말똥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밖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4년 전처럼 아들의 손목을 잡고 맥박 뛰는 걸 가만히 느꼈습니다.
비가 많이 온다는데 괜찮을까 마음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외면할 자신도 없으면서 먼저 말 걸어주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엄마 제사가 다가오는데 저는 아직도 아빠와 냉전 중입니다. 명절에도 안 내려갔는데 엄마제사에도 안 간다면 아빠는 상처를 받을까요 화를 낼까요. 제 마음은 편할까요 속이 시원할까요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고 펑펑 울고 나서 그래도 잘 살아보자고 하고 싶은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걸 보면 아빠가 친 벽이 저보다 더 두꺼운 것 같습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