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머리는 어디 갔을까?

아빠의 배신

by 레마누


밤이 되면 제주 바다가 환해진다. 가까운 바다부터 먼바다까지 한치 배가 가득하다.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라는 제주 속담이 있다. 같은 종류지만 오징어보다 가격이 비싸고 고급 횟감으로 대우받는 한치는 여름철에만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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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아빠는 직접 만든 모터보트를 타고 한치 낚시를 갔다. 금방 잡은 한치가 얼마나 고소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두툼하게 썰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진짜 환상의 맛이다. 언젠가 아빠랑 둘이 보트로 한치 낚시를 갔었는데, 바닷물에 대충 씻어서 고추장 듬뿍 찍고 먹었던 한치 맛을 잊지 못한다.


한치는 오징어보다 조금 작고 살이 통통하다. 열 개의 다리 중에 두 개는 길쭉하고 여덟 개는 짧고 뭉툭하다.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부위는 몸통과 다리 사이를 잇는 눈과 입이 있는 부분이다. 쫄깃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서 일부러 찾아 먹는다.


밤새 낚시를 하고 아빠는 새벽에 들어왔다. 아빠가 낚시를 갔다 온 날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물부엌으로 갔다. 잘 손질된 한치들이 소쿠리에 가득한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입이 있는 머리만 없었다.

몸통도 다리도 있는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딱 그 부분만 없었다. 없으면 더 생각나는 게 사람 맘이다. 나는 꼭 한치 머리가 먹고 싶었다.


어느 날 마당에 들어서는 아빠의 차소리에 잠이 깼다. 깜깜한 새벽이었다. 동생들의 고른 숨소리를 뒤로 하고 부엌으로 가다 멈췄다.


얼른 먹어.

수진이가 이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냥 다 먹어. 괜찮아. 수진이는 다른 거 먹어도 돼.

어때? 맛있어?

맛있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아빠는 알고 있으면서 엄마에게 먹으라고 자꾸 권하고 있었다. 아빠는 날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딸 셋 중에 큰 딸이 제일 예쁘다고 하면서 우리 딸 우리 딸..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빠가 참외 한 컨테이너를 사 온 날 엄마가 행복하게 웃으며 참외를 깎았지. 아빠가 남의 마당에 있는 커다란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무화과를 따 온 것도 엄마가 다 먹었네. 나는 무화과 좋아하지도 않는데.. 지나가던 길에 꺾어왔다던 커다란 백합들.. 모두 엄마를 위한 거였다. 아빠는 엄마만 사랑했던 것이다.

우리 집은 그랬다. 언제나 맛있는 거 좋은 건 아빠가 먼저였다. 아빠 다음에 큰 딸인 나.

그다음에는 동생들. 아빠가 정한 서열은 매우 정확했고, 감히 아빠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을 만큼 아빠는 크고 강했다. 그런데 그런 아빠 위에 작고 예쁘장한 우리 엄마가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위해 밤새 한치를 낚았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과 살다 보면 가끔 아빠의 그런 맹목적인 사랑이 생각날 때가 있다. 남편은 착하고 성실해서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아빠가 거친 파도와 잔잔한 물결을 함께 간직한 바다라면 남편은 언제나 평온하고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이다.

사랑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이고 말을 하는 것도 사랑이다.

그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엄마는 한치를 잡아다 주는 남편이 있었고,내게는 아무리 맛없는 밥상도 군소리 없이 먹어 주는 남편이 있다. 그리고 남의 떡은 언제나 커 보인다.


결혼 전의 일이다.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첫번째 만나는 날 내가 좋아하는 한치주물럭을 먹었다. 남자는 돼지고기를 좋아했고 나는 한치만 골라 먹었다.

"한치 좋아하세요?"

"네. 없어서 못 먹어요."


두 번째 만나는 날이었다

"말 놔도 돼요?"

"싫은데요" (나보다 4살 많았다)

"선물도 가져왔는데"

"선물이요?"

남자가 차 뒷좌석을 가리켰다. 검은 비닐봉다리가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반건조한치 20마리였다. 구워서 엄마와 배터지게 먹었다. 그날 엄마가 말했다

"한치가 참 맛있네."


한치만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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