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기다리는 사람들

1

by 강경아

거리 한 켠. 옆면으로 돌출된 네온사인이 지지직거리다 불을 밝힌다. 연이어 초록 불빛이 어두운 거리를 채운다. 흘림체로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써 있다. 밤과 새벽 사이의 시간, 간혹 오가는 사람은 있어도 텅빈 새벽 2시 풍경이다. 마른 낙엽은 누군가의 발걸음에 바스락 거리지도 않고 시체같이 조용히 누워 있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땅위에 살포시 솟았다가 내려간다. 가게 안, 들어서면 몇 개 원형 테이블위에 작은 앤틱스탠드 등이 놓여 있다. 입구 좌측에는 긴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테이블 뒤쪽 이단 선반 위에 여러 개의 술병이 일렬로 진열돼 있다. 유리선반 바닥에서부터 할로겐 조명이 자리잡고 있다. 그 빛은 아래에서 위로 반사돼 술병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내부는 10평 남짓 길고 좁은 형태이다. 입구 맞은편 끝 청록색으로 칠해진 벽이 있다. 울퉁불퉁한 콘트리트 단면위에 칠해져 모가 난 부분이 눈에 띈다. 그 벽위에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림이 걸려 있다. 무영이 바 테이블 옆 출입구에서 나온다. 검정 앞치마가 단단히 그의 허리에 매여져 있다. 주류냉장고를 열어보고, 술병라벨이 잘 보이도록 줄 세워 정리한다. 빈병은 개수에 맞춰 다시 채워 넣는다. 천장 와인렉에 매달린 잔을 빼서 가지런히 바 테이블로 올려놓는다. 하나 하나 드라이 타올로 닦고 있다. 손은 바삐 움지이고 있는데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인다. 표정에서 복잡함이 묻어나온다.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낮의 통화에 대해 곱씹는다. ‘너 언제 그만 둘래? 아버지는 아직 모르셔. 엄마가 아주 중간에 조마조마 하~다. 무영아! 엄마랑 한 약속 잊지 않았지? 속 한 번 썩히지 않더니 진짜.... 얘.... 내 말 듣고 있니?’ 어머니는 화내듯 달래듯 횡설수설 하셨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야 무영은 상대방이 듣지 않은 대답을 한다. ‘그러게요 저는 왜 이럴까요?’그의 표정이 담담하다. 지문이 묻어나는 지 잔을 들어 불빛에 꼼꼼히 살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새벽 2시 40분. 그의 등 뒤 냉장고에서 윙윙거리는 소리와 불규칙히게 흐르는 심야 라디오 소리만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식어버린 커피 잔에 무영의 긴 손가락이 무심히 걸쳐져 있다. 노트북에서 밝은 화면이 새어나온다. 그가 만든 블로그 ‘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화면에 비친다. 2개월 전 오픈일로부터 지금까지의 단상이다. 연이어 무영은 Pos기로 매출을 쭉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이렇다 할 매상이 없지만 그의 표정에 초조감은 찾아 볼 수 없다. 무영은 노트를 꺼내 칵테일 레시피를 적는다. 11월과 12월 뱅쇼 시작이라 쓰고 재료를 적는 찰나, 유리문이 열리고 어떤 여자가 쓰러지듯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첫 손님이 반가운 마음에 몸을 일으키는 무영. 그의 반응이 무색하게 여자는 바로 등을 돌리고 벽을 마주하고 앉는다. 작고 여리지만 고집스러워 보인다. 초겨울 바람이 잠시 공간을 차갑게 머물다 사라진다.

“주문하시겠어요?”

그가 지은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그녀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다가

“커피요”

라고 말한다. “여긴 카페가 아니....” 무영이 말하다가 그녀의 정수리를 뚱하게 내려다본다. 잠시 후 무영이 커피와 과자를 테이블 위에 놓아둔다. 여자는 여전히 핸드폰에서 눈을 못 뗀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레시피 노트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느새 새벽 5시, 무영은 정리 하다 말고 멀리 테이블을 바라본다. 여자가 어느새 테이블 위로 널부러져 있다. 무영이 그녀에게 다가가 잠시 망설이다 테이블 바닥에 두드린다.

“영업 끝났습니다”

미동조차 없다. 무영은 다시 한번 조금 크게 두드린다. 갑자기 여자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곧바로 걸어 나가 버린다. 그녀의 태연한 행동에 무영은 당황스러워 출입문을 바라봤다. 그의 손에 계산서가 팔랑거리고 있다. 가게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 듯 이내 조용하다. ‘뭐지?....’ 무영이 뒷머리에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긁는다. 잠시 후 가게 안 모든 불이 꺼진다. 모든 거리가 조용하게 잠들어 있다. 아침이 그를 깨우러 오기 전까지.


무영은 유리병에 넣었던 뱅쇼를 꺼내 작은 냄비에 데운다. 이윽고 뜨거운 김이 올라오며, 레드와인과 섞인 계피향이 코를 간질인다. 내열 유리컵에 따른 후 슬라이스한 오렌지와 레몬을 컵 위에 장식한다. 투명한 유리컵 한 가운데에 원통형 시나몬 스틱을 꽂는다. 계피가 녹을 때마다 자연스레 향이 뱅쇼에 스며들 것이다. ‘찰칵’하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업로드 한다.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과일과 섞인 달콤하고 묵직한 맛이 입안에 따뜻하게 퍼진다. 순간 무영은 아늑한 기분에 젖는다. 오랜 시간 만들어 온 레시피 노트를 펼쳐본다. 꼼꼼히 필기한 노트에 잘 정리된 글씨가 빼곡하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화려한 총천연색의 칵테일이 곳곳에 붙어 있다. 칵테일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을까? 교사를 시작하고 몇 년 동안 휴가다운 휴가를 즐기지 못했다. 연구수업이다, 서류작업이다. 뭐다 방학동안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시간여유는 간혹 있었지만, 좀 더 많은 준비를, 다음 학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휴가를 미뤄왔다. 그러다 훌쩍 떠나와서 도착한 홍콩의 마천루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끔 늦은 새벽, 스트레스가 쌓일 때쯤 찾아가는 단골 바도 생겼다. 입맛에 맞는 칵테일을 홀짝이면서 과묵한 바텐더와 두런두런 잡담하는 게 좋았다. 그가 빡빡한 하루 중 완전히 일을 내려놓고 쉬는 시간이었다. ‘언젠가 이런 장소를 만들어야지 누군가가 들러서 편하게 낮의 짐을 내려놓는 곳’ 은연중에 무영은 그런 생각을 지나가듯 했다. 은퇴 후 머리가 희끗한 먼 먼 미래가 아닌 빠른 시일 안에 현실이 될 줄은 그 때 미쳐 몰랐었지만.


새벽 세시 반. 무영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으려는데 지은이 들어온다. 바로 다가와 지폐 몇 장을 슥 그에게 내민다. 무영은 먹던 한 입을 급히 목구멍으로 넘기고 그녀를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녀는 “라떼요” 말하고서 곧바로 어제 그림 아래로 자리잡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샷을 내리고 약간의 우유를 붓는다. 쟁반에 받혀 커피잔과 각설탕이 담긴 작은 그릇을 그녀의 테이블에 놓아둔다. 지은은 각설탕을 넣은 후 티스푼으로 건성건성 휘젖는다. 커피는 간간히 마실 뿐 계속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끄적인다. 무영은 간혹 오는 손님을 맞는다. 어느덧 5시 반, 영업을 끝낼 시간이다. 멀리 아직까지 지은이 남아있다. 한쪽 어깨가 찌그러져 벽에 기대여 있다. 무영이 그녀의 테이블로 다가간다. 지은보다 노트북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빈 화면에 무엇을 쓴 흔적은 없다. 지은은 이마를 찌푸린 채 눈감고 있다. 창백한 눈가에 시퍼런 다크써클이 자리 잡고 있다. 살짝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지은은 귀찮다는 듯이 간신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본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꾸깃한 돈을 꺼내 그에게 내밀고 짐을 챙겨들고 나간다. 무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윽고 네온사인이 지지직 하다 완전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기차가 멈춘다. 15분간 정차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지은은 잠시 노트북에서 손을 내려놓은 후 기지개를 편다. 잠시 여우비가 지나간 창가에 엷은 습기와 물방울이 맺혀 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굳은 몸을 일으켜 잠시 플랫폼으로 바람 쐬러 나간다. 화면을 바라보고 저장버튼을 누른다. ‘거의 다 왔어! 마지막 몇 줄만 쓰면 끝이야’ 지은의 엉덩이도 들썩인다. 쓰고 단 자판기 커피가 몹시 당긴다. 바깥을 바라보니 몇몇 승객들이 종이컵을 손에 쥔 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지은은 계단을 내려가 자판기 앞에 선다. 주저 없이 크림커피를 누른다. 주르륵 기계음과 동시에 액체가 종이컵에 담긴다. 지은이 이윽고 커피를 꺼내 한 모금 마신다.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커피는 순식간에 지은의 입을 타고 온 몸을 활기를 북돋는다. 슬며시 미소가 번지는 지은. 푸른 산 너머 먼 데를 바라본다.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함이다. 잠시 내린 비로 인해 산 아래 중턱에 살짝 무지개가 걸쳐져 있다. “예쁘다!”고 감탄하며 손을 뻗어 본다. 잡힐 리는 없다는 알면서도 하는 행동이다. 어느새 커피가 비워져 간다. 주위를 둘러본다. 옆 사람들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기차가 이미 지은이 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서서히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다. 지은은 퍼뜩 ‘노트북!’하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기차는 이미 점이 되어 저 멀리 가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도 멀어져가는 기차도. 지은이 꼼짝 하지 않는 다리를 내려다본다. 누군가가 콘트리트를 부어 놓은 듯 움직일 수 없다. “안 돼! 안돼! 안된단 말이야” 팔을 마구 휘저어 본다. “띠리리 링~ 띠리리 링!” 핸드폰 알람에 눈 뜨는 지은. 밤새 많이 뒤척였는지 다리 쪽 이불이 뭉쳐져 있다. 지은이 몸을 일으켜 이불을 거칠게 들어 뺀다. 책상 위 노트북을 원망스런 눈으로 쏘아본다.


무영이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를 확인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나 이웃추가를 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다. 아직 반응이 미지근하다. 조금씩 글을 늘려 가면 가게 홍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영업 시작을 이렇게 하면 왠지 처음에 먹은 마음이 잘 유지 될 거 같아서 이 두 가지로 이유로 글을 쓰고 있다. 소재를 생각해 본다. 오늘은 고흐가 즐겨 마셨던 독한 압생트를 말해볼까? 아님 쓸쓸한 밤에 어울리는 위스키에 대해서 써볼까? 아이리쉬, 몰트, 버번. 술과 인생을 비유한 글은 노골적이지 않고 이 곳에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자연스럽게 쓰려고 한다. 한참 쓰던 그의 시선이 멀리 그림 아래 자리에 머문다. '뭘까? 왜?' 블로그 글을 쓰다말고 생각에 잠긴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썼던 글 밑에 덧붙여 이어 쓴다. 바에 와서 커피를 시키고, 글을 쓰지 않으면서 노트북은 가져오고. 며칠은 자지 않은 것 같은 퀭한 얼굴을 해서는 내 가게에서 편히 주무시네. 정말 이상한 여자다라고 연이어 한 줄 더 쓴다. 원래는 영업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이 이상한 여자에 대한 궁금함에 대해 쓰고 있다. 무영은 마우스를 클릭해 아예 '이상한'이라고 폴더를 만든다. 그리고 쓰던 글을 옮겨와 첫 번째 글에 '이상한 여자'라는 제목을 단다.


새벽 무영의 바, 지은이 노트북 자판에 손을 얹은 채 멍하게 화면을 바라본다. 목까지 채운 셔츠를 풀고 한숨을 쉰다. 머리가 아픈지 연신 관자놀이에 손을 넣어 주무른다. 붉게 충혈된 눈에 초점이 없다. 벽에 기대 그림을 올려다 본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감긴다. ‘자고 싶다....’ 새벽 다섯 시, 무영이 지은의 어깨를 흔든다. 살짝 신경질이 섞인 손짓이다. 그녀가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기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 몇 장을 꺼내려는데 무영이 무겁게 내려앉는 목소리를 딱딱하게 말을 꺼낸다.


"저기요 이 곳은 숙박업소가 아니고 바입니다. 뭘 하던 관계는 없지만 잠은 집에서 자요"

그녀가 엉거주춤 고개를 들어 무영을 올려다 본다. 그녀가 무영의 바에 온 후로 처음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미안해요. 잠을 못자서..... 잠이 안 와요. 자려해도 토하느라."

"......거식증인가요?"

"아니오 꿈에서요. 토하는 꿈을 계속요.....지겨워요."

무영의 굳어진 표정이 살짝 풀어진다.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끌어 의자에 앉힌다.

"잠깐만요. 차 한잔 마시고 가요. 보다시피 손님이 없어서."

지은이 그의 손에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카모마일 티를 그녀앞에 내려 놓는 무영. 그의 입꼬리가 아까와 다르게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아까는 마안했어요."

“아니예요. 제가 미안하죠. 여기가 그냥 24시간 카페인 줄 알았어요. 어떻게 커피를 주셨어요?”

“저 마시려구요... 밤에 일하다보니, 필수거든요”

“아...”

잔을 붙잡고 한 모금 마신 지은이 '따뜻하다'고 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