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기다리는 사람들

3

by 강경아

무영이 막 영업준비를 마치고 POS의 용지를 바꾸고 있을 때, 지은이 쭈뼛쭈뼛하며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어 무영에게 다가온다.

“이거...”

지은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종이 상자를 내민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멍한 표정이 아닌 또렷한 얼굴이다.

“뭐예요?” 라고 그가 의아하게 말한다.

“음.... 케잌이요. 어제 미안했어요 제가 진상이었죠. 오늘은 술 마실게요” 지은이 메뉴판을 집어 펼쳐본다. 무영이 그런 지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같이 먹어요” 라고 말한다.

그들은 바 테이블에 마주앉아 뱅쇼와 케잌을 먹고 있다. 어제의 그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는 말없이 조각 케이크의 모서리를 포크로 잘라 베어 문다. 바닐라크림이 빵과 부드럽게 섞이며 입안에서 금방 바스라진다. 그에 반해 지은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먹고 있다.

“오늘은 노트북 안 가져 왔네요”

어색한 가운데 무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어자피 가져 와 봤자 멍 때릴 건데요. 그냥 왔어요”

“작가?.... 예요”

“혹시 선인장에 기댄 하루라고 아세요?”

무영이 기억을 다듬듯이 왼쪽 눈이 살짝 올라간다.

“어 제가 책을 잘 안 읽어서...”

그가 무안한 지 엷은 미소를 짓는다.

“아직 안 나온 책이에요.... 제가 지금 쓰고 있거든요”

무영이 큭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엉뚱하시네!”

지은이 이마에 주름을 잡고 팔짱을 끼고

“그쪽은 무섭구요”라고 말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는 그들. 농담으로 데운 공기가 따뜻하게 감돈다.

“손님이 없네요 나는 좋지만”

지은이 말을 돌린다.

“손님 조금씩 늘어가요 난 이게 좋아요 부담 없이 쉬다 가는 곳.”

“뭐 나처럼 진짜 쉬다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지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은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까 봐 줄게요 ”

무영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팔로 괸다. 지은이 몸을 살짝 틀고 뒤쪽 벽에 걸린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호퍼 그림 좋아하세요?”

지은이 물어본다. 그 말을 듣은 무영이 시선을 지은에게 고정시키며 옆으로 기울여 있던 몸을 일으킨다.

“네 호퍼... 좋아하세요?

“밤을 기다라는 사람들이라고 공연 본 적 있어요. 노래하는 도슨트라는 컨셉으로.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고 재즈공연을 하거든요 연주자들과 관람객이 와인잔으로 건배 하고 진짜 내가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데요. 그거 아세요? 호퍼의 아내가 화가를 꿈꾸었다는 것을요. 평생 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그렇게 호퍼를 구박했다네요. 한 사람과 지지고 볶고 살았으면서 어떻게 그런 고독을 그려냈는지 진짜 신기해요.”

라고 지은이 말했다. 무영이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한다.

“글쓰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건 없어요? 지금은 사는 낙이 없어 보여요”

“글쎄요. 지금은 책 내는 것밖에. 지금은 일단 잠을 푹 자는 거랑 밤새 토하는 꿈에 시달리지 않는거 정도. 그리고 나머지는 차차 생각해 봐야죠. 음... 호퍼가 그렇게 왕성하게 그릴 수 있었던 건 아내의 꾸준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는 구박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그녀는 분명 남편을 응원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한사람과 평생을 걸친 꾸준한 연애, 환상일 수도 있지만 왠지 어딘가에 있을 거 같아요..... 이거 마시니 좀 졸리네요 잠깐만요....”

지은이 바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머리를 파묻는다. 모로 누운 지은이 서서히 눈을 감는다. 살짝 누운 그녀의 옆모습에 고단함이 묻어있다. 얇은 눈꺼풀 위 미간사이가 살짝 찌푸려져 있다. 그녀가 호퍼에 대해 말할 때 무영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낯선데 익숙한 느낌. 말을 나눌 때마다 한겹 한겹 그 이상함 속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무영은 잠든 그녀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뱅쇼 잔과 그릇을 치우고 음악 볼륨을 줄인다. 지은은 깊은 잠에 빠졌는지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꿈 없이 자요. 지은씨’ 멀리 그림 속 여자가 마치 이곳을 보는 듯 기분이 든다. 여기가 그림 속 여자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 아닐까 하는.



두꺼운 안경을 쓴 지은이 글을 쓰고 있다. 화면 하단에 대화창 알람이 반짝인다. 창을 클릭해 메시지를 확인한다.

‘작가님 원고 잘 받았어요 곧 교정보고 인쇄하죠. 나머지 원고도 조만간 부탁드려요’

‘네 편집자님 조금 더 쓰면 될 거 같아요’

노트북 하단 전원이 깜빡인다. 지은은 책상 서랍에서 충전기를 꺼낸다. 충전기에는 투명 테이프가 대충 감겨있다. 자석 처리된 충전기 단자가 조금 까맣게 그을려 있다. ‘원고 마감 끝나면 고치러 가야지’ 지은은 대수롭지 않게 노트북에 충전기를 건다. 그녀가 부엌쪽으로 걸어간다. 오랜만에 음식이 당긴다. 지은이 콧소리가 섞인 허밍을 넣으며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본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책상 아래 노트북과 연결된 충전기 콘센트에서 이따금 파란 섬광이 반짝이다 사라진다. 그와 관계없이 젖어진 커튼 사이로 오후 햇살이 집안을 나른하게 채운다.



어제와 다르게 지금 지은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다. 오전에 작업을 하려고 노트북 부팅버튼을 눌렸다. 웅하는 소리도 없고 화면은 검정화면 그대로였다. 지은은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게 느껴진다. 그녀가 실내복 위로 위옷만 걸치고 노트북을 안고 내처 달려나간다. 이어 수리점에 도착한 그녀. 초초한 마음으로 자신의 노트북과 수리기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뜯어 봐야 알겠지만 내부가 탄 거 같아요" 수리기사가 말한다.

"하드는요? 안에는 무사한거죠?"

지은이 빠른 말투로 물어본다.

"글쎄요 뜯어봐야 알겠습니다. 안까지 손상이 되었는지 그대로 있는지" 기사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지은이 노트북 수리점에서 기운 없이 걸어 나오고 있다. 하늘은 그녀의 마음과 다르게 쓸데없이 맑고 깨끗하다.



새벽 두시, 지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무영이 반가운 마음에 급히 몸을 일으킨다.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영이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은이 의자에 허물어지듯이 앉아 멍하니 이단선반위의 양주를 바라본다.

“보드카 주세요”

“보드카를요.... 왜요?”

“주세요”

몇 시간 후 지은이 연거푸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무영이 안되겠다 싶은지 얼음물을 내밀면서 조심스레 물어본다.

“무슨 일 ....있었어요?”

".......노트북 내부가 탔대요. 뜯어 봐야 글이 무사한 지 알 수 있대요"

지은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다.

“나한테 남는 노트북이 있어요 다시 써 봐요”

무영이 침착하게 말한다.

"모르겠어요 쓸 수 있을지.........."

“수리 들어 갔잖아요 좀 쉬었다 다시 시작해요”

“못해요.... 더 이상은....”

지은이 머리를 쥐뜯는다. 무영이 그녀의 팔에 손을 뻗어 다독다독 한다.

“다 지은씨 머리 속에 있잖아요. 금방 다시 쓸 수 있어요”

“금방이라구요! 태평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은 이해 못해요!"

지은이 몸을 뒤로 빼며 새된 목소리로 받아친다. 그녀의 서슬 퍼런 모습에 무영이 잠시 깊은 한숨을 내 쉰다. 목이 마르는지 얼음물을 벌컥 들이킨다.

"휴....열등감에 베베 꼬인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하겠어요? 지은씨는 자신의 괴로움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에요. 나중에 술 깨면 얘기해요 난 언제나 이 자리에 있을꺼니까 태평하게!"

냉랭한 표정으로 다시 일을 하는 무영, 지은이 일어나 외투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잠시 그녀의 입술이 달싹이다 닫힌다. 그의 등을 잠시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나간다. 무영은 등만 보일 뿐 제 할 일만 한다.



지은이 침대 이불을 걷고 몸을 꿈틀거리며 겨우 일어선다. 그녀의 몸이 잠시 휘청거린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가운데 무영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르다. 그의 실망스런 눈빛이며, 자신에게 위로해 주던 모습까지 그러다 뿌옇게 사라진다. 지은이 속이 쓰리는지 배를 움켜잡는다. 컵에 물을 따라 연거푸 마신다. 몇 시간 후 지은이 옷장에서 외투를 꺼낸다. 황급히 옷을 입다 다시 벗는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나.... 그 사람의 표정까지. 미치겠다. 사과 해야는데'



며칠 후 지은이 택배 온 상자를 연다. 노트북이 수리 되어 새 충전기와 함께 돌아왔다. 노트북 부팅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녀, 끝나자마자 작업하던 폴더부터 클릭한다. 그녀가 작업했던 글이 다행히 남아 있다. 괜히 무영에게 화를 낸 게 무색하리만큼,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지은.




에드워드 호퍼 '밤을 새는 사람들'

[소설 제목은 호퍼의 그림에서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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