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부산벡스코 육아박람회장에서 나는 보험은 다리 힘으로 버티는 직업이라고 거듭 느끼고 있었다.
일반인이 보험업을 하는 지인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다. ' 내 얼굴 봐서 한번 들어줘' 청탁식이니까. 처음에 여동생이 이 일을 시작한다 했을 때 다른 식구들은 하나같이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들 싫어했다. 예상대로 동생은 식구들에게 보험을 들어달라 부탁을 했었고 우리는 당연히 가족이라 들어줬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내가 여동생과 같은 길을 걸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약 2년 전 동생이 거주지를 경기 쪽에서 본가로 합치면서 서울 무슨 박람회 영업부로 옮긴다고 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때부터 동생은 서울 경기 지방 등을 캐리어를 끌고 큰 박람회 도는 영업을 했다. 그때도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사실 여동생은 그리 끈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업이 쉬운가? 무엇을 할 생각이 없던 사람의 마음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돌리는 일 아닌가?
보험이 실생활에 필요하고 한번 해볼 만 직업이라고 느낀 계기는 자연스레 찾아왔다. 동생이 권해서 실비보험을 들어놨었는데 자주 병원투어하는 내게 도움이 되더란 말이다. 코로나 후유증일지 몰라도 환절기마다 목이 자주 아프고 감기가 독하게 걸려 잘 떨어질 줄 몰랐다. 사실 이럴 때 보험실비청구가 쏠쏠했다.
일반 지점 영업을 하던 여동생이 서울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바빠도 얼굴에 생기와 활기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바로 일한 만큼 받는 수입의 힘이라는 걸 알았다. 동생은 많이 번 만큼 가족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이혼 후 두 아이의 가장으로서 짐이 버거울 법한데도 보상이 있으니 힘내서 일하는 듯하다.
옆에서 지켜보니 자연스레 내가 하면 어떨까? 해볼까? 해보자가 된 거다. 지난주 수요일 포항부터 시작해 부산에 개인적으로 9년 만에 방문해 일하고 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부산의 밤거리를 거닐며 어릴 적 살았던 부산을 회상했다.
그리고 어두운 밤엔 ktx를 타고 익숙한 서울로 돌아왔다. 음 우선 좋다. 마침 오래 서 있었던 다리의 힘으로 고객계약 또한 하고 왔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겠고 선배의 말처럼 기다리고 거절당하는 일의 연속이겠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자. 고객에게 웃으며 편안하게 다가가자. 그리고 처음 다짐처럼 도움이 되는 설계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