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휴직

첫 책 이후의 날들

by 강경아

첫 책 『동네에 남아도는 아가씨』에서 밝혔듯이 오래 쉬었다. 사실 그 보다 긴 시간을 틈틈이 기약 없이, 쉬었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이 심하다. 그때 느꼈던 ‘이 시간이 언제 끝날까?’하는 아득함과 답답한 마음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일한다.


노동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알베르 카뮈』


이 말에 강력히 동의한다. 오래전 드라마를 공부할 당시, 나는 겉보기에 열심히 드라마를 공부했다. 습작을 해야 해서, 동아리 멤버들과 공부 해야 해서, 작품구상을 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전혀 돈 벌지 않았다. 그 대신 습작을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어설픈 흉내만 내며 여의도에서 2년을 보냈다. 당시 드라마에 온몸과 마음을 바쳤다고 생각했다.


‘열심’의 기준이 지금 생각하면 모르겠다. 작가교육원에 전설처럼 들려오는 노희경 작가처럼 해야 했나? 그녀는 공장에서 교육비와 생활비 번 후 교육원에 입학했다. 습작시절, 수많은 라면상자에 대본이 쌓일 만큼, 글을 썼다고 한다. 아니면 유명 드라마 막내 작가가 되기 위해 누군가에게 잘 보였어야 했나? 아니다! 내가 그 시절 가장 후회한 일은 다름 아닌 생활을 놓아버린 거다. 누구만큼 치열하게 글 쓰지 못하면서, 주변머리가 좋아 인맥을 쌓지 못했다면, ‘생활’이라도 놓지 말았어야 했다.


글은 지나고 보니, ‘사람의 삶’ 특히 먹고, 일하고, 자고 하는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일상을 놓아버리고 글에만 빠져 있었다. 알맹이 없는 글, 생활이 빠진 공허한 글 말이다. 그렇기에 생활을, 글을 놓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일하고 쓴다. 예전처럼 삶이 부패하지 않기 위해, 내 영혼이 질식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말에 쉽게 압도된다. 특히 자신이 약한 부분이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말에 대한 말이다.


그들은 귀가 얇아 갈피를 못 잡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쉬지 말고 어떤 성과물을 촘촘히 인생에 쌓으라고. 네 가치가 하락하기 전에 많이 쟁여놓으라고 그것이 돈이 되든 집이 되든 사실 이는 주객전도라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열심’의 굴레에만 빠져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쓰임 즉 돈을 벌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쉬지를 못한다. 자주 쉰다는 건 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니 예전의 나처럼 ‘노동만’ 하는 삶은 금방 부패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사람은 언제라도 ‘인생 휴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 항로를 수정하고 영혼이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후 영혼이 원하는 일과 삶이 부패하지 않는 노동을 함께 할 수 있다. 내가 긴 시간을 버리고, 메워 가면서 얻은 소중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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