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은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싶을 줄 알았다.
8월 14일이 마지막 출근이었으니, 드디어 만으로 퇴사 한 달을 찍었다.
지난 6년 9개월 동안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일을 한 덕(?)분에 분에 넘치게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지만, 퇴사를 앞두고는 번아웃의 절정에 다다라서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마이갓...!! 늘 하고 싶은게 많아서 문제인 나였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을 수가...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이런 무기력함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이게 진짜 내건가 싶기도 하고, 이런 무기력을 느끼는 내 자신이 싫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이런 나를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무 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 것도 안하면서 살면되지.... 그러다 보면 지겨워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퇴사 후 뭘 할거냐고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늘 똑같은 답을 되풀이 했다. "지금은 너무 지쳐서 좀 쉬면서 생각해보려구요." 그리고 정말 생각했다. 한 일년은 정말 푹 쉬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무기력을 즐겨야지. 마음을 편안게 하려고 일부러 1년동안 쓸 생활비를 넉넉하게 넣어놓은 생활비 통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퇴사 한달만에....너무 빨리...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계획에 전혀 없는 건데.....
그리고 난 분명 한달전만 하더라도 번아웃에 찌들어서 평생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떻하지 라는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었는데... 뭐...뭐지? 아무튼, 왜이렇게 빠르게 마음이 태세전환 했는지는 차차 살펴보도록 하고...
회사 다닐때도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었지만,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조금씩 만들어 가는 과정은 그것보다 훠얼씬 즐겁고 신나다. 한 스푼 정도의 불안이 늘 따라다니지만, 난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고, 그 최악의 상황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이란 마음이 올라오면 그냥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떠나가게끔 내버려둔다.
퇴사 후 한 달. 짧다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즐거워지고, 가벼워 진 것 같다.
퇴사 후 두 달, 세 달 , 여섯 달, 일 년 뒤도 점점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