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Sep 16. 2019

나의 모닝 루틴 변천사

무기력한 나를 다시 의욕 뿜뿜나게 해준 작은 성공 

 새벽 6시50분까지 등교해야하는 고등학교, 새벽 6시40분에 통근버스를 타야하는 첫 회사를 다닌 덕분에, 

아침은 늘 나에게는 지옥같은 존재였다. 피곤에 쩔어 일어나서, 15분만에 샤워 및 화장을 포함한 모든 단계를 휘리릭 해치워버리는 게 이십대 중반까지 나의 모닝 루틴이었다. 아침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한다, 아침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하루를 결정한다 등등등 아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1시까지 회식하고  6시 40분에 통근버스 타는 삶에서 여유롭고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는 건 정말이미... 쉽지 않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지옥 같았던 새벽 출근에서 해방되고, 모닝 루틴이 하루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꾸는지 경험하기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모닝루틴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했다. 나는 총 10쪽 짜리 모닝루틴/이브닝 루틴 매뉴얼을 만들어서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야하는 일은 총 9가지 였는데, 모닝페이지 쓰기로 시작해서 찬물샤워, 명상, 감사일기, 여러 가지 책에서 발퀘한 좋은 구절 낭독하기, 나의 인생목표 읽기, 하루 계획 쓰기, 건강한 아침식사 먹기, 가벼운 요가 하기 까지 정말 해야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모든 루틴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모든 루틴을 지켰고 그 덕에 나의 일상도 나날이 좋아지는 듯 했다. 정말 신기하게 모닝 루틴 때 썼던 목표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모닝루틴을 모두 끝낸 날은 마치 슈퍼우먼이 된 것 같이 자신감이 뿜뿜 솟았다. 그런데 일이 바빠지고 출장이 잦아지다 보니, 이렇게 긴 모닝 루틴을 매일 지키기가 점점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과정도 너무 긴데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게다가 내가 모닝 루틴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탓에, 나중에는 한 두개라도 못지키고 건너뛴 날이 있으면 하루종일 찝찝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른바 완벽주의의 늪에 빠져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나는 왜 이런 간단한 루틴들 마져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거지? 라는 자책감을 느끼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자책감이 들 때면, 모닝루틴을 더 열심히 해서 이런 자책감과 실패감을 극복해야해!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번아웃으로 지쳐 있었던 지난 2년은 모닝루틴 없는 삶을 살았다. 5년 정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주말에도 왠만하면 7시에는 일어났는데, 이 시기에는 너무 힘들고 지쳐서 아침 8시 반에 겨우 일어나서 꾸역꾸역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모닝 루틴을 다시 시작하면 분명 에너지도 더 샘솟고 하루를 더 잘 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긴 모닝루틴을 다시 시작할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왜냐면 2시간 씩이나 걸리니까.....) 

흐흙. 생각해보면 좀 더 일찍 퇴사를 했었어야 하는 건데, 이 시기에는 에너지가 쪽쪽 빨려서 퇴사를 결정할 수 있는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힘들면 힘들다는 말을 할 수조차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거 같다. 

퇴사 후, 이제 다시 모닝 루틴을 만들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다시 만드는 모닝루틴은 아래 3가지 원칙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첫째. 나 자신에게 친절하기, Be Kind to Yourself! 

둘째.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 하루에 하나씩만 성공해도 충분히 잘한거라고 인정해주기. 

셋째. 힘을 배고 가볍게 생각하기. 

 

긴 모닝 루틴은 성공하면 엄청난 성취감을 주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패배감을 준다. (나의 경우에는) 

그래서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래 딱 3가지만 하려고 한다. 


첫번째 : 차마시기 

두번째 : 10분 명상 

세번째: 찬물 샤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는 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좀 더 남고 여유가 있으면 모닝페이지를 간단히 쓰기도 하고, 명상도 20분 30분 까지 더 길게 하기도 하고 책도 읽는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옵션일 뿐이다. 만약 너무 바빠서 (사실 퇴사 덕분에 요즘은 바쁘지도 않지만...ㅋㅋㅋ) 이 세가지를 다 못하는 날이 오면 딱 한가지라도 해도 (보통 샤워는 하니까... ㅋㅋ) 성공했다고 셀프 칭찬해준다. 

이렇게 간단한 모닝루틴에 성공하면 그 날 하루에 대한 통제권이 나에게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찰스 두히그가 쓴 1등의 습관 이라는 책에 따르면  2010년 컬럼비아 심리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인지과학의 경향> 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할 때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감이 더 강해지고 역경도 더 빠른 속도로 이겨낸다고 한다. 


나에게 짧고 간결한 모닝루틴은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극해주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작은성공의 경험을 매일 아침 쌓을 수 있도록 해주고, 이런 좋은 경험들이 쌓이다보면 계속해서 선순환이 만들어 진다. 번아웃때문에 완전 기진맥진 한 채로 퇴사를 했는데, 한 달 만에 다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뿜뿜 솟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한 달 동안 나름 꾸준히 모닝루틴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에전에도 차는 꾸준히 마셨는데, 예전에는 차를 마시는 경험이 성취와 연관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는 행위가 오늘도 뭔가를 해냈다는 좋은 성취 경험으로 연결되어 진다. 그래서 처음 모닝루틴을 만들때에는 더욱 더 어렵지 않고 쉬운 걸로 만드는게 정말 중요하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10분 정도 위빠사나 명상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제 끓여놓은 보이차를 마시면서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쌓아올린 작은 성취감은 나의 뇌를 뿜뿜 자극해서 더좋은 하루를 만들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 후 한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