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Oct 28. 2021

세 가지 삶의 양식 : 소유, 경험, 존재(1)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택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을 구분해보자면 크게 소유적인 삶, 경험적인 삶, 존재적인 삶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간은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이므로, 한 인간의 삶의 양식을 무 자르듯 구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살펴보면 각자의 삶에서 좀 더 강하게 발현되는 삶의 양식은 분명 존재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소유적인 삶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채 생을 마감한다. 물론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이고, 살면서 아주 가끔은 자신의 에고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신비로움 혹은 광대함을 만나기도 하기에, 소유적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는 존재적인 체험을 하고 또 그런 상태에 잠시 머물기도 한다. 이 체험이 너무 강렬해서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돈오'의 체험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런 체험이 바른 수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삶의 양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존재론적 삶의 양식을 간직한 채 살아가기에는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에, 왠만한 힘을 갖고 있는 인간이 아니고서야 존재적인 삶의 양식을 지속하기란 쉽지가 않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소유의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한글자씩 뜯어보면 때때로 소름이 돋을 때가 있는데, 너무나 직접적으로 '돈이 최고야'  외치고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자본주의만큼 인간을 자유롭게 해준 사상도 없다.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은 더이상 굶어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졌다'라고 이야기  수도 있겠지만, 기술을 통해 돈을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그렇게 열심히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일  있었을까? 소유적인 삶의 양식을 주기능으로 쓰고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 자본주의의 충실한 부품이 된다. 열심히 생산하고 열심히 소비한다.  좋은  소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마르지 않는 부족함을 느낀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무언가를 가진다는 관념은 무언가를 가지지 못한다는 관념을 동시에 수반할  밖에 없기에 언제불안하고 부족하다.  


사실, 소유란 단지 물건의 소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건의 소유보다 무서운 것은 생각에 대한 소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소유일 것이다. 소유적인 삶의 양식에서는 인간 관계 또한 소유의 개념에서 생각된다. 내 부인, 내 남편, 내 자식, 내 친구,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이 분류되어 버린 소유의 세계에서 소유권 안으로 들어온 것들은 안온한 보호를 받기도 하지만, 통제를 받기도 한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해서 그들의 시간과 미래를 통제하려한다. 생각의 소유는 또 어떤가? 생각을 소유한 사람은 융통성과 유연성을 가질 수 없다. 그들에게 생각이란 고정된 틀안에 있는 얼음 같은 것이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되고 또 기화되어 기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려워한다. 왜냐면, 자신의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니까. 물을 얼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차가운 온도와 틀이 필요하다. 이 온도와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의 소유라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의 흐름을 꽁꽁 얼려서 1mm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얼음틀에 넣어서 고정시켜 놓는 것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나 역시 삶의 많은 부분에서 소유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사랑을 소유하려 하고, 내 주장을 굽히는게 싫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내가 산 아파트랑 주식이 더 많이 올랐으면 좋겠고, 때때로 별 이유없이 갖고 싶은 것들이 생겨서 텅장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나의 어떤 의식 수준에서 이 행동이 나오고, 이 말이 나오고, 이런 욕구가 나왔는지 바라볼 수는 있다.


한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어쩌면 소유적인 삶의 방식에서 경험적인 그리고 궁극적으로 존재적인 삶의 방식으로 옮겨간다는 것일 것이다. 그 여정을 촉발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여정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 이상주의자를 위한 경제적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