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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Jun 08. 2022

살아야 하는 이유

실존의 위기와 극복 

1. 빅터프랭클은 삶의 의미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은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데에 있다. 인간은 그냥 세상속에 던져졌다. 왜 태어났는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다. 태어났으니까 태어난거고,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다. 모든 존재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미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 이걸 죽도록 견딜 수 없는 인간은, 여러가지 믿음을 만들어서 삶의 의미를 만들어냈다. 종교를 만들고, 신화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래서 나는 때때로 어쩌면 중세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신이 있고, 명확한 선과 악이 존재하고, 신이 나에게 부여한 존재의 의미가 있고, 나를 기다릴 천국이 있는 삶이란 얼마나 충만한 삶인가? 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냥 하나만 포기하면 된다. 의심하는 것. 


3. 이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인간은 엄청난 실존의 위기에 부딪혀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옳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다행히도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이 고민을 했던 수 많은 철학자들이 있고, 우리는 채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때로는 무료로 그들이 했던 치열한 사유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4.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던 어떤 절대적인 믿음의 체계가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선하다고 믿던, 옳다고 믿던, 우리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그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신을 죽였다고 이야기 한다. 


5. 문제는 신이 죽은 곳에서 인간은 엄청난 실존의 공허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을 죽인 인간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곳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구별되지 않는 곳, 삶의 의미가 사라진 곳, 죽음 뒤의 천국과 영생이 사라진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간이 신을 죽인 후 도달해야 할 곳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쩌면 인간은 절대로 신을 죽이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신을 죽인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신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6. 니체는 위버맨시(초인)을 이야기 한다. 초인은 힘에의 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모든 것이 몰락한 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스스로 삶의 희망과 긍정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다.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자신이 믿던 모든 가치가 무너지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삶을 살아갈 그 어떤 의미도 남아있지 않은 그 곳에서 니체는 희망과 긍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허무와 절망의 끝에서 희망과 긍정을 발견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니체는 인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신을 죽인 인간들은 이제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한 신이 되어야만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고. 힘을 가져야 한다고. 위버맨시가 되라고. 


7.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인정해 버리면 엄청난 허무함과 공허함이 밀려온다. 모든 것이 가상이라면, 모든 것이 허구라면, 모든 것이 그저 허상이라면, 우리는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실존의 문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배부른 투정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이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정도의 엄청난 강도와 깊이의 고민이다. 실제로 내가 실존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했을때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도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사람 뿐이었다. 


8.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봉착했는데 답을 찾지 못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생각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겨난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아직 죽기에는 삶이 주는 감각들과 느낌들과 생각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죽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9. 다시 결론은 하나로 모아진다.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르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것은, 지금 당장 죽어도 아쉽지 않게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고, 또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장 내가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심장마비가 오거나 갑자기 지진이 나거나 감전이 되어서 죽는다고 해도 아주아주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10. 스티브 잡스는 이야기 했다.  "삶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그대로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선뜻 Yes 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다시 한 번 크게 돌아볼 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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