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날을 생각하며

by 레몬쟁이

어느 날 동군이 나에게 물었다.

‘만약에 미래의 기억이 없이 과거로 가게 된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아마 내가 로또번호 가지고 가고 싶다고 할까 봐 제약을 둔 모양이다. 그런데 평소 답지 않게 듣자마자 든 생각은

‘아빠 돌아가시던 날’

이였다.


아버지는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좋은 분은 아니셨다.

좋은 기억이 20%라면 나쁜 기억은 80% 였다


부모님은 늘 싸우셨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적이 많았다. 여전히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인데, 어릴 때 트라우마 때문인 듯하다. 정말 슬픈 기억이 참 많다.


고3 겨울 감기인 줄 알았던 아빠의 병은 췌장암이었다. 엄마는 병간호로 서울에 가시고 난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다. 엄마가 일주일에 이틀 오시면 내가 서울에 가서 아버지를 간호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서 퇴원하시게 되었고, 난 진학 대신 서울로 돈을 벌러 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퇴원 후 달라지신 것 같았지만 이내 본인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셨고 결국 두 분은 이혼을 하셨다.

두 분의 이혼으로 난 아버지와 2년을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


어느 날 봄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연락이었다. 아버지가 우릴 보고 싶어 하신다고 해서 병문안을 갔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던 아버지는 너무 여의셨고, 힘들어 보이셨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미안하다 하시며, 잘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서먹하게 만난 며칠 뒤 병원을 옮기셨는데 그때 마지막으로 뵈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몸에 암이 퍼져서 말씀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하루하루가 고비셨다.


그리고선 따뜻한 어느 가을에 고모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눈을 감으셨다.

젊은 나이에 고생하시다가 본인의 잘못으로 마지막 순간에 자식들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밉고 싫었던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나를 키우시던 나이가 되어가면서 문뜩문뜩 생각이 난다.

참 젊으셨구나, 아버지도 힘드셨겠구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 무게를 알 것 같았다. 물론 가족들에게 무력을 행사하셨던 건 여전히 이해도 용서도 하지 못 하지만 말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건 여전히 마음이 쓰인다. 다시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아버지 곁에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리고 싶다.


- 영화 ‘잔칫날’을 보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저도 입관할 때 많이 운 기억이 있어요. 그 날 뵈었던 아버지의 얼굴은 참 평온해 보이셨어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화목한 가정 꾸리셔서 이생에 못 가져보신 행복 가져 보셨으면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의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