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감각
낡은 일기장을 다시 덮은 기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이미 7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차분히 앉아 그때를 생각하니 여전히 그 날의 느낌, 그 날의 사유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2014년은 성인이 된 후 가장 첫 기로에 섰던 순간이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사회’라는, 아직은 미지의 세계를 목전에 둔, 여전히 많은 것이 서툴고 많은 것이 두려웠던 시간. 그리고 동시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두려움만큼 용기도 있었던 시기였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꿈이었으나 글다운 글을 쓰기에 나의 짧은 식견과 연륜에 자신이 없었고, 성적을 맞춰 진학했던 의류학과 의류 디자인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고 흥미로웠으나 옷에 대한 내 재능과 열정에 대해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고민을 우선 뒤로하고 떠났던 런던 여행은 나 자신과의 데이트 같았다. 철저한 이방인이자 관찰자로 완벽하게 낯선 곳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나는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것들로 가득한, 그에 대한 선택의 시간 조차 충분히 주지 않는 사회 앞에서는 사실 좀처럼 누리기 어려운 그런 여유였다. 그 느낌이 좋았다. 퇴근하는 튜브 안, 모두가 지친 눈을 하고 있었으나 나 홀로는 마냥 설렜던 그날의 오후처럼. 그 장면을 몇 번이나 재생하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다짐했다. “그 여유를, 그 낭만을, 그 여행의 감각을 잃지 말자.”라고.
물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다시 현실과 마주한 나의 고민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에 따른 많은 선택을 지나 승무원으로 일하는 지금조차,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보다 문자 그대로 ‘여행자’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때로는 매인 자로, 때로는 놓인 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여행의 감각’이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에 대한 정답이 어디에 있겠으며, 있다한들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고민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리고 가끔은 삶의 속도와 무게에 치이고 매몰되어도, 여행자처럼 언제나 그 감각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삶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추신.
여행 내내 품고 다닌 수첩에 끄적였던 내용을 슬며시 꺼내본다.
선택에는 책임을 다하자.
그러나 무엇인들 두려워하지 말자.
지칠 때는 쉬어 가자.
그러나 다시금 여행하듯이 걷자.
무엇보다 오늘의 이 감각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