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시댁은 매년 명절이면 친척들 모두 모여서 제사를 지내는데 이번 설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는 탕국을 끓이시고 며느리들은 전을 부치느라 바빴다.
남자들은 집안을 부지런히 청소하고 아이들은 모여서 사촌들과 신나게 게임을 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차례를 준비하고 오랜만에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매년 그렇듯이
약간의 체면과, 약간의 스트레스와, 약간의 즐거움으로
명절은 흘러가고 있었다.
요즘은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개인적인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간단한 외식으로 명절을 대신하기도 한다는데
시댁은 차례상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나도 함께 정성으로 참여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상님을 믿느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조상신, 혹은 신, 아니면 사후세계든
아직은 난 잘 모르겠다.
한때 엄마를 따라서 열심히 교회에 나가보기도 하고
신랑 따라 절에도 가보고 했지만 말이다.
힘든일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 부처님, 조상신, 모든 신을 찾고 울부짖으며
제발 도와주십사 매달려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라 살아가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나약하고
믿음 없는 일개 개인에 불과했다.
어쨌든 설날 아침이 밝자, 모두 모여 떡국을 먹고 차례를 지냈다.
돌아가면서 술잔도 따르고 정성스레 절도하고
그러다 옆에 있는 동서한테 뭘 좀 물어본다고 고개를 돌렸다.
동서 얼굴보다 그 뒤에 잡힌 무지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식탁 옆 기둥 가운데에 무지개가 선명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갑자기 전에 들었던 대학 강의가 생각났다.
20년 전인가, 우연히 대학에서 생명 의료에 대한 수업을 들었었다.
어디까지를 사망으로 인정할 것이냐, 뇌사, 장기기증 등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소위 썰(?)이라는 것도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어디서 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조상님이 잘 지낸다는 신호로
흰나비의 형태로 무덤주위에 나타난다거나 무지개로 비춘다거나
그랬다는 얘기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와 같은 신비한 이야기들.
시간이 흘러 그 이야기들은 어렴풋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차례가 끝날 때까지 곁눈질로 무지개가 아직 있는지 계속 신경을 썼다.
명절을 잘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랑한테 조심스레 물어봤다.
"자기는 조상님이 오늘 오셨다고 믿어?"
"몰라, 근데 뭐 그런 건 있지. 할아버지가 지켜주시려니 하는 거."
"그래? 자기 혹시 아까 무지개 봤어?"
"아니, 근데 명절 지내느라 수고했어. 여자들이 힘들잖아. 고생했어. 집에 얼른 가서 쉬자."
"아, 그래. 알겠어. 집에 가서 낮잠 좀 자야겠다."
나는 집에 돌아와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바닥을 유심히 살핀다.
혹시나 또 무지개가 보이나 해서.
정말일까. 모르겠다.
조상님은 무지개로 오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