싶다가도
어제 부터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좋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도 안 좋다. 아 그때쯤이구나.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2주년 기념일이 되었을 날이다. 결혼을 하면 좋다는 데 그건 어떤 느낌일까?
작년에는 몸이 많이 아팠고, 올해는 맥주가 너무 먹고 싶다.
편의점에 가서 4개에 11,000원 짜리 맥주를 한아름 품에 안고 왔다. 어제 처럼 1개만 사려고 했지만 오늘은 당일이니까 4개 먹어도 돼. 블랑 1664를 골랐다가 가벼운 통장잔고를 생각하고는 한맥으로 골라왔다. 한국인이니까 한맥을 먹어야지...
어쩌다 한번씩 술을 먹으니 맥주 한 캔에도 기분이 몰랑몰랑해진다. 술을 마시면 내 감정이 어떤지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생각보다 꽤 괜찮아졌다. 올해는 맥주가 먹고 싶었지만 내년에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칼을 들고 있는 그모습이 떠올랐다.
(똑.똑.똑.똑.) "나야, 문 좀 열어줘. "
뉴스에서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칼로 살해 당하는 여자들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살인자들의 선하게 생긴 얼굴을 보면 그자식의 선한 눈매가 떠오른다. 나도 어쩌면 이 기사의 Y씨가 되었을지도 몰라. 생각하면 이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나 자신의 안전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참으로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청년들이 결혼을 안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결혼을 아직 안했냐면서, 비혼주의냐면서, 결혼은 꼭 해야하는 거라면서, 35세가 넘으면 노산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실상은 어떠한가.
저는 남자를 좋아해요. 결혼하려고 모아둔 돈은 이미 한번 결혼을 했기 때문에 다 써버렸어요. 걔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살던 자취방에서 신혼을 시작했거든요. 걔는 몸만 들어 왔어요. 그 집에서 받은 건 걔네 엄마가 해준 100만 원 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밖에 없어요. 그것도 팔 때는 25만원인가 받았어요. 다이아몬드 값이 떨어져서요. 아이를 낳으려면 자연 방법이 필요한데 걔는 부부관계를 더럽다고 생각했는걸요. 3개월 같이 사는 동안 5번 한거 같은데요. 그것도 5분 미만으로요.
그래서 나는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아서 문제라는 말이 너무나 불편하다. 0.67명을 낳는 저출산이 심각한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데 아이는 혼자 낳나요. 누구랑 낳나요. 하는 생각은 패배의식인걸까. 씁쓸함인걸까. 잘모르겠다.
그러다보면 아 혼자가 편한거구나 싶다가도 아 나는 나이 들어서 혼자살 자신이 없는데 싶다가도
나의 상처를 이해해줄 남자가 나타나면 좋겠다 싶다가도 돈이 있어야 남자를 만나지 싶다가도
아 역시 돈 버는 게 최고지 싶은데 아, 그 돈도 없네 싶다가도
아니 너는 생존자 아니냐. 뭐든 할 수 있어!!! 뚫고 나가!!!
싶다가도 싶다가도 싶다가도 하다가 또 한 캔, 또 한 캔 늘어난다.
친구랑 만나 이야기했다.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 저쩌고. 아무런 판단 없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 내 친구들은 다 결혼을 해서 애를 낳은 것일까.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받는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는 여전히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숨길 생각은 없다.
무턱대고 저 이혼했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상하자너.
어쨌든 글쓰다보니까 마음이 풀렸음.
모두 좋은 사람 만나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