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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Jun 27. 2024

신혼 없이 돌싱이 되었습니다.

큰 고통 후의 삶에 대하여

12주 차 김소월 소리 내어 읽기가 끝났다. 매주 수요일 9명의 사람이 모여 일주일 동안  쓴 글을 읽고 김소월의 시를 함께 읽는다. 나는 애매한 한국어 뒤에 숨어 나의 근본적 자아만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오늘도 시인님은 그것을 캐치한다.


"글을 써보고 싶다고 하셨죠? 레몬숲님이 글쓰기를 잘하셔서 하는 말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에게 왜 그런지를 설명해줘야 해요. 그래야 독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저는 저에 대해 오픈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는 편은 아닌데 듣는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얘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과 대화하면서 듣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읽기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책을 읽는 것은 강제성이 없거든요. 어떤 책은 한 번에 다 읽히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읽는 사람이 감당이 안돼서 며칠씩 읽기도 해요.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고. 그런데 결국은 다 읽게 될 거예요. "


"왜요? 다음이 궁금해서요?"


"네,  예를 들어 세월호 생존자 같은 사람들의 글은 우리가 한 번에 읽기에는 감당이 안돼서 다 읽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좋은 글이란 내 마음에 어떤 것을 일으켰을 때 느끼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 얘기를 해야 하면요. 독자 입장에서 내가 이 정도까지 읽어야 돼? 싶을 만큼 얘기를 해야 해요." 


"저는 아직 저의 글을 판단받을 만한 용기가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내 글을 읽고 위로를 얻지만, 누군가는 나를 지탄할 거예요. 장정일, 마광수 작가가 그랬죠. 그렇지만 그 글을 씀으로써 레몬숲님이 새로운 회복을 얻을 수도 있어요."


"아, 그 말도 맞는 말씀이세요. 제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데요. 브런치에는 정말 솔직하게 글을 올리는 편이에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메일을 보내 주시거든요. 저는 저의 솔직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감사하다고 하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로 인해 제가 정말 많이 위로되고 눈물도 나고 하더라고요. "


"네 맞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 쏟아내야 해요. 글쓰기에 용기가 필요해요." 


집에 와서 종로에서 있을 낭독회를 위한 글을 5편 써서 보냈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몇 개 보냈다. 인생의 헛헛함과 쓴맛, 너의 말소된 주민등록번호, 무지개가 떴다, 이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쓰세요. 를 보냈다. 사실하려고 했던 것은 만만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쓰세요' 였으나 자기 고백적 글쓰기가 가진 힘에 용기를 내서 "너의 말소된 주민등록번호"를 보냈다. 


"어떤 글이든 괜찮아요? 읽어도?" 


"네 괜찮아요. 어떤 게 괜찮을지 알려주세요!" (사실 너의 말소된 주민등록번호 빼고요.)


"말소된 주민등록번호를 제가 조금 손봐서 드릴게요!" (ㅎㅎ... )



"이 정도로 수정해 보면 어떨까요?"


"좋아요ㅎㅎ 단호하고 의미전달이 잘 돼요. 지금은 사실 좀 무덤덤해졌는데 마지막 한 줄을 바꿔볼까요?"


"이 글을 읽은 적 없죠? 뭐라고요?" 


"네. 한 번도 읽은 적은 없어요. ㅎㅎ 그냥 쓰기만 하고" 




말소된 주민등록번호


“높은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

사람을 볼 때 좋은 측면을 주로 보는 사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어떤가? 이런 장점이 있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된다. 아직도 그 망령은 내 주변을 서성인다.


그에게 무릎 꿇고 빌었던 그날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는 내게 “네가 진짜 폭력이 뭔 줄 아느냐”라고 물었다. 울다 지쳐 더는 목소리가 안 나오고 위장이 다 타들어 가서 명치가 몸 밖에 있는 것 같고, 편도가 말라가는 게 느껴질 때, 그는 내게 “네가 울면 칼로 널 찔러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헛구역질하고 화장실 바닥에 위액까지 게워냈다. 참 웃기다. 결혼하고 석 개월 만에 이 모든 상황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울다 실신하고 자다 깨면 그는 주방에 서서 조용히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 그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겼었다.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그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는 끝까지 내 탓을 하고는 결국에 사탄 탓까지 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일까. 그는 천국에 갈까. 그가 있는 천국이 천국일까.


인제 와서 욕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게 화가 난다. 속은 것도 화가 나고, 이런 나 자신이 너무 화가 난다. 이용당하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그를 이해하려고 한 것, 그만큼의 이해심을 정작 나에게는 베풀지 않은 것. 그는 분명 잘 훈련된 개를 원했다.


걷고 또 걷고. 쓰고 또 써서 내 마음을 치유하려 애쓴다. 망령은 실체가 없으나 어디에나 있다. 헤어지고도 난 여전히 그때가 선명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도 놀라서 깨고 윗집에서 쿵 하는 소리에도 놀라서 일어난다. 거실에 나오면 아무것도 없음에 허탈해한다.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설치한 텐트 문을 닫는다. 이불을 덮고 베개를 끌어안는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했다. 혼인신고란에 있는 그의 주민등록번호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그가 죽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법적으로 남이 됐는데 왜 열세 자리 숫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걸까? 화가 난다. 그가 언젠가 나를 찾아오지는 않을까.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복지사 공무원이 돼서 내 정보를 찾아보게 되면 어찌할지 걱정한다. 그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 같은 건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는 거짓말을 아주 잘하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왜 바보같이 합의를 했던 걸까. 독하게 마음먹고 소송을 해야 했는데. 그때 나는 너무 착했고 지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은 그를 빨리 끝낸 것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그를 더 빨리 끊어내지 못한 것, 그를 불쌍히 생각한 것, 그의 영혼을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용서란 무엇일까? 하나님은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하나 깊이 깨닫게 된 것은 성경에 나오는 ‘악의 사람들’은 정말로 있다는 사실이다. ‘지옥’은 정말 있구나. 그는 자기 거짓 자아에 갇혀서 또 누군가에게 기생하며 살아가겠지. 부디,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어서는 천국에 가길 바란다. 그가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나에게 있어 최고의 용서가 아닐까. 난 메시아가 아니다. 


언제쯤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타인이 원하는 삶에 끌려다니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응적이지도 모질지도 못해서 경계선 없이 집 없는 달팽이처럼 살고 있었을 것이다. 큰 고통을 겪고 나면 초연해지는 것 같다. 슬픔이 고여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 거라고 믿는다.



"아 좋아요. 그런데 글을 쓸 때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하는 게 더 좋은 표현이 되나요? " 


"더 좋은 표현이 되지는 않아요 사실. 단정 짓는 표현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럴 거라고 믿는 게 맞기 때문에 그 표현 좋아요. 제가 쓰는 글은 꽤 단정 짓는 게 많은 편인데 에둘러서 써봐야겠어요. ㅎㅎ" 


"사실 에세이에서 단정 짓지 않는 게 어려운 거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단정 짓는 걸 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레몬숲 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직 살 날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점도 있고,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게 좋은데 무언가 가르치듯이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지점인 거 같아요. " 


"음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거 좋은 거 같아요." 


"되게 잘 쓰셨어요! 힘 있는 글이에요. 꼭 자기 고백적인 글이 다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자기 고백적 글이 가진 힘이 분명 있어요."


"에세이가 정말 어려워요 ㅋㅋㅋ 나를 오픈하는 거 옆에 있는 사람한테는 하겠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기록으로 남겨지니까요." 


"에세이도 약간 퍼즐처럼 생각해 봐도 좋아요." 


"퍼즐이요?"


"이 글이 있으니, 아까 내 결핍은 안전한 공간을 누리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는 글이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 


"아" (이번 주에 나는 '뇌에는 마음이 있다'를 읽었다. )


"답이 없는 것도 답이다라고 적었던. 글과 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하나의 글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마시고 말소된 주민등록번호 같은 글은 핵심이 되는 글이에요. 나의 내밀한 이야기니까요. 이런 내밀한 이야기가 덜 내밀한 이야기에도 영향을 줘서 아 이 사람이 이러이러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구나. 납득을 할 수 있게 해요. 그러니 반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A라는 글에서 했던 말을 다른 글에서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어차피 다 연결돼 있으니까요. 책이라는 집에서는. 하지 말라는 게 그 내용을 전혀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해요. 같은 이야기라도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새로운 이야기처럼 읽히니까요." 


"같은 방식이라 하심은 어떤 걸 말하나요?" 


"음... 단순하게 말하면 똑같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걸 피하는 것도 있을 거고. 반복과 변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피아노....... 칠 줄 아세요? 똑같은 코드를 반복해서 치는 게 아니라 같은 C코드라고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변주해서 치면 좋을 것 같아요. 기존 C코드에서 1옥타브 올려서 C코드를 치던지.. 등등... 

ㅎㅎ 설명하려니 어렵네요 ^^.... 음 그렇게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요. 글들을 통해서. 하나의 풍경을 그린다고 하면 아까 이야기하듯 글 하나하나는 퍼즐 조각인 거죠. 그 퍼즐 조각이 맞춰져서 큰 그림이 완성되는 거예요. [말소된 주민등록번호] 정도의 글이 9.4매, 10매 정도예요.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요새 에세이가 얇아져서 400매 정도면 한 권이라고 보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 정도 분량으로 40 꼭지에서 42 꼭지 정도 모이면 한 권의 에세이가 완성되는 셈이에요."


"아 생각보다 많네요! 오.. 저 이런 글 84개 정도 써놨는데 ㅋㅋ 목차가 애매해요." 


"글을 많이 모였네요! 차근차근 퇴고하면서 하나하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거치고 종이로 인쇄해서 조각 맞추듯 순서를 맞춰봐도 좋을 거 같아요 ^^"


"오... 너무 좋아요. 부지런히 더 써볼게요!!" 


"더 쓰는 것도 좋지만 84개나 있으니 퇴고부터 해보시는 걸 권해드려요. 합칠 글들은 하나로 합치고 "


"다시 읽고 고쳐보는 거죠?" 


"네네. 에세이는 콘셉트가 있어야 해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한 줄로 정리해 봐도 좋을 거 같아요. 한두 줄로 에세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으면 좋아요. 그러면 방향이 잡힐 거예요." 


"음.... 저는 신혼이 없었는데 돌싱이 되었습니다 와 상처 입고 조금씩 아름다워져 간다 라는 제목으로 나눠서 글을 쓰고 있어요."


"네네 그럼 그 콘셉트로 정리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헤어짐 그 이후에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알려주신 것들 잘 반영해서 퇴고해 볼게요 ㅎㅎ 감사해요!!!"


"신혼 없이 돌싱이 되었습니다. 큰 고통 후의 삶에 대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글로 남기는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저도 꽤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편인데 이혼 얘기는 편하게 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아직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요즘 이혼이 아무리 흠도 아닌 시대라지만 진짜 이혼한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물론 저도 점점 무뎌지고 잠깐 스쳐간 악몽 같고 그래요. 한번씩 현타오지만 각자의 현타는 다 다르게 있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각자의 아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너무너무 춥고 힘드시더라도 꼭 힘내시면 좋겠습니다. 

응원할게요.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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