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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Oct 10. 2024

지나가도록 놔둘 것들

Good bye my Jeju

이젠 정말 놓아줄 때가 되었다. 일 년 동안 나의 외장 하드 안에는 제주도에서 기억들이 남아있다. 한 번에 지울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라 날아가버릴까 그대로 묻어 두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 아니던가. 이제 제주를 마무리할 때다.


내가 잠시 서울에 왔었던 것은 집에서 키우고 있던 식물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정성을 들이면 보답을 한다. 말 잘하는 인간들보다 말 못 하는 식물에게 받는 위로가 더 크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식물에게 받는 감정은 '수용'이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도 그저 나일 수 있는 감각을 원했다.


나는 제주에서 행복해야만 했다.


이별에 서툴렀고, 이제 더는 없을 것 같은 사랑이 시작되었다. 인생에 지쳐 무인도에서 살고 싶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 밖에 없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이별이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시작하였다.


그토록 바라던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꿈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나의 자아는 매우 유약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찾아온 이 사랑도 결국은 흔들렸다.

삶을 살아갈 때 피할 수 없는 어떤 일들 중에 하나였을까.

그렇다면 나는 괜찮아질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행복해지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싶어졌다.


컵에 가득한 흙탕물을 빼내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을 계속해서 부어야 했다. 나에겐 제주도가 그랬다. 그러나 그건 도피였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된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름답게 기억되어야만 하는 시간으로  마음을 먹어야 했다.


나는 슬픔을 애도하지 못했다.

이 슬픔은 상실의 결과로 생겨난 나의 내면을 지배한 감정이었고, 애도는 슬픔을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별에 서툴렀다. 나는 이별이란 감정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개자식을 떠난 것은 조금도 후회되지 않으나 아름다웠던 나, 결혼적령기의 어여쁜 나를 잃었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나의 소중한 것이 떨어져 나간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나는 이별을 삶의 경험의 하나가 아닌 삶의 패배 중에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 남자를 만났으니 한동안은 정말로 비현실적으로 행복했다.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생각보다 무지하고 세밀하다. 잊힌 기억들을 다시 떠올릴 때에 사실은 그다지 좋았던 것만 있는 건 아니었는데도 나는 좋았어야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으니까.


제주도에 가기 전에 줄기가 부러진 몬스테라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데 제주도를 다녀오니 물도 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새 잎사귀를 내고 있었다.


미처 발행하지 않은 저장글들이 많이 쌓여있지만, 지금의 나의 마음은 그때와 다른 사람이라 저장글들을 지워냈다.

시간을 붙잡고 순간을 기억하는 것에 글쓰기만큼 좋은 도구는 없지만 글쓰기는 시간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라서 그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사라지게 된다.


이별 후 모든 감정은 정당하다. 내게 밀려오는 수치심, 죄책감, 내 자아를 향한 증오.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잘 떠나보낼 수 있을까.


내가 경험했던 정서적 마비를 흔들어 깨운 것은 다시 찾아왔던 사랑이었다. 그 연애의 감정은 강렬했고, 영원하길 바랐고, 영원했어야 했다. 제주도 남자와의 연애는 내가 눌러 두었던 나의 감정을 흔드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


나는 그의 사랑을 먹고 생의 속도를 늦추고 심리적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사랑했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사랑받았다. 8개월 간의 제주도에서의 사진첩을 둘러보았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 관계도 끝날 것을 알고 있었다.


상실과 이별을 부인하는 마음에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왜곡된 현실 감각을 갖게 된다. 다른 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통과해야 했다.


모든 것을 알 수가 없다.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만나니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미칠듯한 성욕으로 괴로워했다. 죄를 짓고 싶은 마음들을 억누르며 그저 주님의 긍휼 만을 구하며 베개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내가 원한 것은 성적인 쾌락으로 얻는 만족이 아니라 안전하고 따뜻한 품이었다.


나의 싸대기를 후려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내가 했던 것은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해지는 타인의 사랑에 내가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그와 이별하고 혼자가 된 줄 알았으나, 더 깊은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외로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러나 인생이 외로운 것은 디폴트 값이 아니겠나. 내면의 아이가 울부짖을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나를 내던진다.


나는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질 것이며, 나를 알아간다.  어떤 것은 내가 애써도 안 되지만 어떤 것은 그냥 놔둬도 되는 것이 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산다.


안녕, 제주.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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