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공원
너무 서러워서 바람이 부는데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고달팠다.
이겨내고 극복해 가는 것이 지겨웠다. 대체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가.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었으나 하얀 종이만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내 백일장에서 당선된 적도 없는 니가 어떻게 작가가 될거냐며 나의 꿈을 비웃었던 선생이 있었다. 그 선생의 말에 내 꿈은 좌절되는 것 같았다. 나의 글로 살아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 선생이 종종 떠오른다.
교내 백일장에서 1등 해본 적은 없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어요.
여러 해 걸쳐 그럼에도 나는 글을 썼고 나의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내 자신에게 애정어린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기에 나에게 딱 맞는 언어들을 찾지 못하였다.
신학을 하면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나를 부인하라고 성경은 가르치는데 왜 나는 나의 자아를 찾으려 이리도 괴로워하는 걸까.
나는 지금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자기부인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찾고 있다.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데 자기부인과 나를 학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검열하고 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에 눌러 두는 것이 익숙했다.
나의 현실과 감정을 부정하면 기억들은 조각이 되어 나를 비난했다.
타인에게 이용당하면서도 나는 늘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생존자에게는 번영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번영감이란 내가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힘이다.
나는 내가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강점의 재료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누군가를 살리고, 돈을 벌 수 있다면
나는 그게 글쓰기였으면 좋겠다.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그리고 아침은 언제나 온다.
내가 있어야 할 곳과 있고 싶은 곳. 그게 내 업이 되려면 나를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부터 괜찮아진 것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부터이다.
나에게 결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돌봄이 어떤 감각인지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꽤 아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내가 받아왔던 상처는 나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니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는 나의 책임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함몰되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그렇다면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의 의문들은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풀리지 않는다. 일단은 책상 위를 정리하고 포스트잇을 정리하고 책상을 닦는다. 매일매일 작은 성취들을 하고 일상을 가꿔가다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