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일주일 동안 방에 누워만 있었어요.
예쁜 제주 바다가 앞에 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제주에는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친구랑 대학 졸업하고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닿았어요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들을 나눴죠.
친구는 에어비앤비를 하나 갖고 있었고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편하게 쉬고 가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저는 고마운 친구 찬스로
제주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휴대폰은 대부분 비행기 상태로 두었어요.
사람이 너무 싫어서요.
아침에 일어나서 천장을 멍하게 보는데
햇빛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더라고요.
반짝 거리는 게 꼭 제주 바다 같기도 하고
내 서러움 같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주 날씨는 좋았다가 비 왔다가
좋았다가 비 왔다가 오락가락하더라고요.
밤이 되니까 비가 많이 왔어요.
저는 좋았어요.
숙소 한편은 큰 창이었는데
커튼을 열면 비 오는 게 다 보였거든요.
멍 때리면서 생각했어요.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정신을 차리고 꽃집에 가서 좋아하는 노란색 튤립을 샀어요.
친구가 챙겨준 와인잔에 노란색 튤립을 넣어
가장 잘 보이는 데다가 두었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하고
캔들을 켰어요.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는데 좋아하는 노래와 꽃을 사니 눈물이 났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왜 그동안 포기하고 살았나 싶어서요.
안전기지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어요.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어떤 자극도 있지 않은 편안한 공간이었어요.
서울에서는 마음 둘 곳이 없었어요.
버스를 타는데 눈물이 났어요.
버스를 타고 있는 내가 너무 행복해서요.
육지에서는 버스, 지하철도 못 탔는데
제주도에서는 버스를 타고 있으니까요.
버스를 타는데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람이 너무 싫었어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서 괴로웠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거였어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나를 알아봐 주는 좋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생은 매우 혹독했죠.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날 만한 능력이 있을까?
나는 온전히 자립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자립할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는 항상 노트를 들고 다녔어요.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에만 집중하기로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