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삭, 별 같아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사실은 혼자 있는 시간을 기다렸어. 우리 집에는 마녀 할머니와 폭군이 살거든.
학대와 방치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7살짜리 어린아이는
엄마를 지켜주고 싶다. 그래서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린다.
엄마에게는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내가 슬픈 것을 엄마에게 들켜서는 안 돼
나만 조용히 하고 있으면 돼
벽에다 종이를 붙여서 칠판을 만들고 좋아하는 크레파스를 꺼내온다.
혼자 벽을 보면서 선생님 놀이를 하고 있는 소녀는 말한다.
"자, 오늘은 선생님이 그림을 그려볼게요.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어요?"
"네 선생님, 저는 하트를 그려주세요."
"그러면 학생이 좋아하는 색깔이 있나요?"
"네 선생님, 저는 파란색으로 칠할래요."
선생님 한 명
학생 한 명
그러면 두 명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은 한 명이네.
눌려 있던 용수철들이 튀어나온다. 이 막막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은 어디에서 왔나.
나의 외롭고 슬픈 근원들이 튀어나온다.
인간의 삶이 죽음을 향해가는 것인지, 살아 있는 게 감사한 게 맞는 것인지 그저 자고 싶을 때, 죽어서 영원한 기쁨이 있는,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그곳에 빨리 가는 것이 더 논리적인 것 아닐까? 하는 인지적 오류 속에서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잔잔한 위로를 얻는다.
모든 애씀에 대한 허무함, 내가 누구인지, 어떠한 존재인지 찾아가는 과정에 맞닿는 시행착오 속에 겪어야 하는 불편한 감정들에 주눅 들고 판단하고 판단받는 인간 세상의 툭 내뱉는 한마디 말들이 너무나도 아파 나를 진정 이해하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정녕 상담 선생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현타 속에서 너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고 속지 말자고 그렇지만 내가 한 행동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단호하게 나를 달랜다.
모든 인생은 현재가 처음이 아니던가. 결국은 공수래공수거인데 애써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귀찮고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막막함에 톡 건드려지면 터져버리는 아픈 기억들을 직면하며 소란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오면서도 정작 나를 지키지 못하는 자의식과잉에 혼란스럽다. 빨리 답을 내려 안전기지를 갖고 싶은 연약함을 소몰이하듯이 천천히 통과한다. 감정이 앞서 논리성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고 쓸데없이 터져 나오는 진심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 닻이 끊어진 선박 마냥 이쪽 바람이 불면 이쪽으로 쓸리고 저쪽 바람이 불면 저쪽으로 쓸리는 게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나의 마음에 그렇구나 할 수는 없는 걸까
경계의 허용범위가 넓었던 나의 인생이 화장터에서 나오는 뼛가루가 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인간관계에서 괴로웠던 이유는 나의 존재보다 상대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는 말처럼 그렇게 용납받는 경험이 한번쯤은 있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푸르른 열매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마른 장작 같은 영혼이 되어 코 끝에 숨이 언제 떨어질까만 기다리던 수개월의 시간 동안 다 타고 남은 잿더미 위에 꽃 하나가 피어났다.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쉽지 않아
원한대로 흘러가는 얘긴 없는가 봐
오늘도 방에 앉아
나를 읊어 본다
아픈 시간의 내 삶을 바라보면
지난 흔적 속 풍경이 문득 떠올라
깊숙이 숨어 있는
무심하게 지났던
잊혀져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바랜 기억 위에 쌓인 먼질 털어내면
잊고 있던 시간들이 문득 떠올라
다시 그 자리에 앉아
나와 마주한다
잊혀져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흘러가는 시간 돌이켜 보면
너를 위한 의미가 되고
헤매는 수많은 별들이
제 위치를 찾듯이
잊혀져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