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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May 06. 2024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

사려니숲길 




나의 결핍을 알고 있었다. 

메말랐지만 누군가에게 쉼이 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거라고. 나의 선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악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많이 경험해 왔음에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도, 사역을 할 때도, 직장에서도, 악의 사람들은 항상 있었는데 나는 왜 나보다 타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끝까지 파고들어 답을 찾아가는 기질을 가졌다. 

인지적 종결욕구. 하나가 끝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애매함을 싫어했다. 


절대로 채워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외로움이, 

나의 깊은 웅덩이가 한 번에 채워져서

주변을 모두 종교적인 것들로 채웠다. 

보이는 곳곳에 말씀 구절을 붙이고 

좋아하는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치웠다.

금식기도원에 분기별마다 들어갔고

신학 관련 서적에 돈을 썼다. 


그러나, 공허의 주체가 기독교가 되고 내가 믿은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해

그동안 내가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인도받았다고 생각한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동안 나는 뭘 했던 걸까. 허무했다.

아니,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존재론적인 구멍이 미친 듯이 뚫렸다.


나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내가 죄를 지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나는 완벽해지고 싶었다. 신앙인으로서 본을 보이고 싶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려 했다.

콩 한쪽도 나눠 주려 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기독교라 생각했다.


받은 것보다 돌려줘야 하고

주는 것에 익숙하게 살았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원하는 깊이만큼 사랑해야 했으니까.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되는 시점에

내가 익숙하게 선택했던 것들을 생각하니

굴레에서 나오려면 사랑을 누리는 것을 배워야 함을 깨닫는다.

나를 보호하고 산다는 게 참 이기적인 거라 생각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정말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자유롭다.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길 원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든 불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늘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현생에서 탈출하는 붕붕 떠 있는 종교가 아니라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신앙을 배워가는 것 같다.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안부 문자가 

나 참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나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너무나 따뜻하다

 

서울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받은 사랑을 반드시 나누며 살 것이다. 



제주에서 버스를 탈 땐

지도를 확인하고 바다와 가까이 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건물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바다가 정말 예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 튀어나올 때에

나도 모르게 숨이 멎는다. 

 

길에서 만난 제주 사람들은 늘 정겹다.  

특히 할머니들이랑 이야기할 때가 재밌는데 

내가 어플을 확인해서 버스가 언제 오는지, 길을 어떻게 가는지,  

스마트폰에서 전화 거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면 

제주도 사람이 육지에서 결혼하면 

마을에서 잔치를 해야 하는 걸 배운다. 

사람 사는 정이 쌓인다. 

 

내가 바다를 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이 누군가에게는 

온통 물로 막힌 감옥의 섬이다. 

제주에 태어난 제주 사람은 예쁜 제주 바다를 지나가도 

별로 감흥이 없다고 한다. 

제주 사람이어도 먹고사는 게 바빠 

제주에 놀러 온 육지 사람보다 가본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경험이란 얼마나 단편적인가 생각한다. 

한 인간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이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구덩이 속에서 탈출했다.

온몸과 맘에 화상을 입어 탄 냄새가 난다. 

좌절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인생이다. 

탄 냄새들이 날아간다.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인간은 타인의 세계를 안다고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지각의 협소함을 가졌으나 

배고픔에 잠드는 아이의 마음을 보듬는 위로를 가졌다.

그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쓴 조심스러운 마음들을 

생각하니 울컥한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듬고 안아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당연한 위로는 없다.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하는 위로는 골수까지 와닿는다.  

떠오르는 몇몇 이들로 또 눈물이 맺힌다. 

인생 무게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다음 일정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시간이 주는 자유로움은 명치끝을 편안하게 한다. 

날아갈 것 같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고

두뇌를 풀가동하여 일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쉼이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할 것 같은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인생은 몇 회차의 굴곡을 지나야 하는 걸까?

이제 나를 갈아 넣으며 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일상을 찾아간다. 

 

난 정말 소중해!!! 

You are not alone. 



끝도 없는 갈림길에서 나는 이제 겨우 살아있는 것 같다. 

나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는 내가 되어야지. 


고라니랑 눈치게임.. ㅎㅎ 사실 나 쫄았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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