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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Apr 30. 2024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상실들

그곳, 성산일출봉에 왔다.



그곳 성산일출봉에 왔다. 울타리 앞에 서서 한참 우도를 바라봤다. 


내 인생 가장 아름다워야 했던 첫날부터 악몽이 현실이었던 사방이 바다로 막힌 감옥섬 제주

어딜 가나 바닷가라 이대로 죽어도 티 안 나게 조용히 갈 수 있었던 제주 

뇌의 모든 스위치가 꺼져버렸던 제주 


최악이 된 폭력섬 제주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고 무엇을 만날지도 모른다. 

성산은 화려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니라 거뭇한 어두운 바다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가진 결핍이 나로 인해 나아졌으면 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내 마음 같지 않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내 마음을 아는 것 같다가도 더 멀리 가버리고

잔정에 약한 나는 또 그 시간을 다시 견뎌야 한다.

정들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이미 정이 들어 있다.


감정 느끼지 마.

이성적으로 생각해.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 인가 하는 생각에

슬퍼진다.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문학이, 시가, 노래가 나를 위로한다.


성산일출봉에서 내가 좋아하는 보룡제과까지 걸어서 50분 정도 걸린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도 걷기에 멀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유독 사람이 없는 둑길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잡초들이 뒤엉켜 있다. 

기분이 묘했다. 제주 해안에 이렇게 인적이 없는 곳이 있었나?

그냥 기분이 너무 싸해서 차도길을 따라 나왔는데 안내문 같은 게 있길래 읽었다. 


'4·3 성산터진목 유적지' 


정말 미친 듯이 소름이 끼쳐서 순간 소리를 지르고 도망쳤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고 심장이 뛰었다. 예쁘게 보이던 바닷가에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워서, 내가 밟고 있는 땅 위에서 사람이 죽었다니 그들의 피가 흐르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순간적으로 훅 들어온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뛰어 도망치다가 다시 돌아와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천천히 읽었다. 왠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았다. 




4·3 성산터진목 유적지 

영주 10경 중의 제1경인 성산일출봉과 마주한 이곳 성산포터진목은 4·3 당시 성산면 지역주민들이 토벌대에 끌려와 학살당한 한과 눈물이 서린 현장이다. 4·3 당시 성산포에는 서북청년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특히 서청특별중대가 이곳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산면 지역 일대는 죽음과 통곡의 소리가 끊이지 않은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만큼 이들에게 한 번 잡혀가면 그것이 곧 죽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학살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며 그 숫자 역시 4백여 명에 이른다. 성산일출봉과 마주하는 이곳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4·3 당시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제주 4·3의 아픈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곳 성산포 터지목 해안가 모래밭 일대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이 지역 무고한 양민들이 군인과 경찰에 끌려와 무참히 학살된 곳입니다. 어미의 등에 업힌 젖먹이에서부터 80넘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총과 칼과 죽창에 찔려 비명에 가신 곳입니다. 아비가 아들을, 아들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젖먹이가 엄마를 찾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전을 때립니다. 이제 이곳에 지나시는 모든 이들께서 추모의 뜻으로 바치는 꽃잎을 이 돌에 새겨서 4백여 영령들이 영면하심을 빕니다. 

_2012년 11월 5일 성산읍 제주 4·3 사건희생자 유족회 회원 일동



                    


무고한 생명이 억울하게 희생되어야 했던 학살의 터 제주도가 이제는 관광객들의 휴양지가 되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 온다.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것들을 꿈꾸며 쉬어간다. 


나의 삶도 이랬으면 했다. 


나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그저 하나의 암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누군가에게 쉼이 되어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마야 안젤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Surviving is important. Thriving is elegant







"자아 존중은 자신의 결정권을 인지하는 데 있다. (…)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한다. 신념, 감정, 의지, 살아가는 총체적 방법 등이 이에 들어간다. 이것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능력과 용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면에서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강함을 뜻한다. 여기서 자기 존중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앞에서 베른하르트 빈터가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타인과 분리하고 자신을 인정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었다면, 감정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친밀감과 거리감에 관한 문제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 문제라면 베른하르트는 쉽게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학생 시절에 그가 살았던 주거 공동체에서 마약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베른하르트는 룸메이트들이 아무리 권해도 거절했을 것이고 때로는 놀림도 참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동참하지 않고 버틴 것은 그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을 것이다. 자기 존중심이 거둔 이 작은 승리는 결혼 생활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이다. 주위 사람들과 어색해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얼굴 붉히기 싫어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며 미화하거나 부정하기 급급했을 때 자아 존중감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 어떠한 것에 저항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우리는 거대하고 위험한 충돌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 상황이 어떻든 원칙은 항상 똑같다. 타인의 동의를 얻기 위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것, 존엄성을 걸면서까지 남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_ <삶의 격>, 페터 비에리




저는 지금 주인님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방해하지 맙서 뇸뇸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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