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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헛헛함과 쓴맛 그리고 덤

협재해변

by 레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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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속에서 나를 살리는 판단을 내리고 끊어 내었다는 것.

울리는 전화를 누를 수도 없을 만큼의 깊은 우울 속에서도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외상 후 장애 증상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소중한 사람의 조건 없는 지지가 필요하다.

어떤 인간도 나를 100% 채워줄 수 없으나

나를 지지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그냥 나로 봐주었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 나를 쓸쓸하게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이

또한 선하신 뜻 속에 있다 생각하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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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은 삶에 대한 욕구를 일으킨다.

허무주의에 줄곧 빠져 들지만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난도질당한 2년 전과 올해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삶의 의지를 잃었다.

여전히 곳곳에 화상의 흉터가 있어 아프지만 점점 더 내가 좋아진다.


인간이 주체성을 가진 다는 게 뭘까 한참 생각했다.

내 인생에 대한 결정권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마음.

경계를 세우고,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한 심정에서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용기.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힘.


나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이 외로움은 죽어서야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도 된다는 것.

내 인생의 시간은 오롯이 나의 속도라는 것.


때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 짜증 나고 주눅 들지만

언젠가는 나의 이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만나지 않아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담담함과

그래도 나는 외로운 사람이라 혼자서 살 수 있을까 하다가도

지금이 너~~~ 무 좋다. 물론 오락가락하지만 덤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기분이다.


사람은 언젠가 떠날 수 있지만 나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면 된다.

나를 품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게,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얼마나 사람을 숨 쉬게 하는 것인지. 이제 더는 과거에 매여 있지 않고 아쉬운 것은 의식적으로 끊어버리고

잔잔하게 살아간다.


안겨서 울고,

말하다 울고,

밥 먹다가 울고,

걷다가 울고,

울고, 또 울고.


나의 자존감 배터리는 "그렇구나"라는 말에서 온다.

'그럴 수 있겠다'라고 나에게 숨 쉴 공간을 두는 것이다.

내가 틀린 말을 하더라도, 그럴 수 있겠다. 그렇구나. 토닥여주면

나는 용기가 난다.


나의 자존감 배터리 충전기들을 만나면서

한 사람의 지지가 누군가의 마음을 살게 하는 것에

살 맛난다고 느끼게 하는 것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느낀다.


하찮은 나의 작은 진심을 귀히 여김 받아

이런 은혜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지

나는 더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다.


내가 밥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프진 않는지

궁금해해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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