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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10. 2022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요리한 적 있나요?

나만을 위한 식탁 차리기

새벽 6시 반,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둘째가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안방 침대로 파고든다. 자는 척을 해봐도 아이는 얼굴을 비비며 일어나길 독촉한다. 하루의 시작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두 아이 아침 차리기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라 항상 먹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영양을 고려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다양하게 식사를 차리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소고기 장조림을 잘게 잘라 참기름을 두르고 김가루를 뿌려 주먹밥을 만든다. 하트 모양으로 치즈를 잘라 동글동글한 주먹밥에 올린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으면 행복하고, 잘 안 먹는 날은 마음이 어둡다. 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예쁘게 차려주려고 자료를 찾고 시도해본다. 루피 모양 틀에 밥을 넣어서 캐릭터 모양을 만든 후 그릇에 올린다. 김가루로 눈과 입을 만들고 짜장 소스를 이불처럼 덮어준다. 아이들이 그릇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고 수저를 든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내 배가 부른 듯 행복하다.


반면 내 밥은 어떤가. 아침은 보통 먹지 않는다. 아이들을 먹이고 등원 준비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가끔 먹을 때는 대충 서서 아이들이 남긴 밥을 흡입한다. 점심도 대충 끼니를 때운다.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국에 말아 밥을 넘긴다. 또 어떤 날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대충 꺼내 양푼이에 넣고 고추장, 밥과 함께 쓱쓱 비빈다. 설거지 거리도 줄고 그럭저럭 맛있고 든든하게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뚝딱 먹으면 5분도 안 걸린다. 밥을 먹는다는 표현보다 고픈 배를 적당히 채운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테다.



구름이 잔뜩 낀 날,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하는 상념에 사로잡혔다. 물기 가득 머금은 마음을 쥐어 짜내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 나만을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요리한 적이 있던가. 까마득한 결혼 전 생각을 더듬으며 칼질을 한다. 토마토, 아보카도, 삶은 계란, 오이를 작은 큐브 모양으로 자른다. 각 재료를 다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평소 같으면 이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을 테다. 오늘은 그 시간이 나를 돌보는 시간이라고 아까워하지 말자고 마음먹는다.


큰 접시에 양상추를 손으로 찢어 펼친다. 큐브로 자른 야채들을 한 줄로 나란히 올린다. 콥 샐러드다. 노랑, 빨강, 초록 등 다양한 색깔이 그릇을 물들인다. 파스타면을 삶는다. 베이컨과 브로콜리를 넉넉히 넣고 크림소스를 부어 파스타를 만든다.


분홍색 타원형 테이블 매트를 깔고 하얀색 예쁜 그릇에 파스타를 담았다. 고소한 향을 뿜어내는 커피를 내린다. 김연우 노래를 튼다.  샐러드와 파스타  그리고 라테 한잔. 나만을 위해 차려진 식탁을 바라본다. 감미로운 노래가 공간을 감싸 흐른다. 카페 부럽지 않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 차려졌다.


한 동안 소박한 소원 중 하나가,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일이었다. 어린 두 아이 키우느라 늘 서서 먹거나 우적우적 빠르게 먹어야 했다. 같이 놀자고 조르는 아이에 쫓겨 식어빠진 커피를 원샷했다. 혼자 한 번이라도 우아하게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싶었다.


포크에 파스타를 돌돌 감아 꼭꼭 씹는다. 베이컨의 짭짤함, 브로콜리의 아삭함과 크림소스의 꾸덕한 질감을 천천히 느껴본다. 랜치 소스를 뿌린 콥 샐러드를 포크로 콕콕 찍어먹는다. 부드러운 아보카도가 입안을 감싸고 토마토가 상큼하게 터진다. 오이의 꼬들꼬들함이 목을 넘어간다. 음식의 미묘한 맛들을 잘근잘근 즐긴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 무언가 가슴속에 치민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물이 흐를 것처럼 먹먹해진다.


그동안 나 자신을 너무 천대하고 하찮게 여겼다는 생각이 일렁인다. 항상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살았다. 아이들이 내게 전부였다. 아이들만 잘 먹고 잘 자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은 뒷전이었다. 그렇게 소홀했던 내 자신이 말한다.


‘나도 아껴줘.

나도 돌봐줘.

나도 생각해줘.’


나도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음미할 자격이 있다. 나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 숨겨뒀던 진실이 드러난다. 나를 잘 대해줘야 했다. 내 안에 기쁨과 평화가 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할 수 있다.


가끔 아이들에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내 꿈을 묶어두고 집에만 가두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 원망스럽고 불만이 가득해진다. 자유를 꺾인 새가 된 듯, 나는 법을 잊은 오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를 소홀히 여기고 뒷전으로 미뤄두었기 때문일까. 내 안에도 나라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데. 자기를 돌봐주지 않아서 원통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딸기를 좋아한다. 몸값이 점점 비싸지는 딸기를 매번 장바구니에 넣는다. 서로 먹겠다고 다투는 아이들에게 딸기를 씻어서 대접한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딸기를 참 좋아했다. 언제부턴가 딸기를 먹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먹지 않았다. 내가 먹으면 아이들이 먹을 딸기가 줄어들어서……. 가끔 잘라 낸 꼭지를 먹는다. 사과도 아이들을 위해 잘라주고 씨가 붙어있는 몸통의 살을 뜯어 발라먹는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안다.




오늘은 나만을 위해 과일접시를 차린다. 딸기 서너 알을 씻어 가지런히 올려두고 사과와 바나나도 얹는다.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나도 잊지 말고 챙기기로 한다. 내가 나를  대접해야 남도 나를 귀하게 여긴다. 나를 소중히 높여야  안의 어린아이가 서운해하지 않을 거다. 엄마로만 살지 말고 나로서도 살기로 하자. 가끔 나만을 위해 요리하고  생각만 하자고 내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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