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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13. 2022

당신을 위해 꽃을 사세요

나에게 생명력을 선물하다


꽃을 좋아했다. 꽃을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꽃잎의 생기가 좋았다. 꽃들이 제각각 내뿜는 그들만의 향기를 좋아했다. 꽃을 만지고 있으면 아름다운 것을 마주한 기쁨을 느꼈다. 결혼 전 직장인 시절, 6개월 정도 플라워 레슨을 받았다. 고등학교 담임 3년 차였다. 매일 야근을 강요하는 학교 분위기가 싫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5시에 칼퇴를 하고 플라워 수업에 갔다. 매주 다른 꽃들에게 위안을 받았다. 오늘은 어떤 꽃을 만지고 느끼게 될지 기대감이 있었다.      


먼저 꽃의 이름과 특성에 대해 배우고 꽃가지를 다듬었다. 대부분 길게 잘라낸 형태 그대로 온 꽃들이라 지저분한 이파리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이파리를 떼어내고 손끝에서 팔 중간까지 올 정도 길이로 잘라 다듬었다. 꽃에는 얼굴이 있다. 각 꽃의 얼굴 크기와 종류를 생각하며 플라워 폼에 꽂을 구도를 잡았다. 큰 얼굴을 가진 꽃은 메인에 꽂아 뼈대를 잡았다. 작은 얼굴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역할을 하는 하늘하늘한 서브 꽃들을 그 옆에 꽂아 메인 꽃을 돋보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유칼립투스 같은 초록색 필러를 넣어 빈 여백을 채웠다. 꽃바구니가 완성되었다. 매번 다른 색감과 향기를 뽐내는 작품이 태어났다.      



꽃을 만지고 다듬고 향기를 맡았다. 그 시간 동안은 학교일에서의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향수보다 코끝을 은은하게 자극하는 자연의 꽃 내음이었다.  마음을 리프레쉬하게 해 줬다. 꽃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여름에는 큰 해바라기를 만졌고, 가을에는 국화에 빠졌다. 꽃을 만지며 자연과 세상을 느꼈다. 집으로 가져간 바구니 꽃들은 내 하루하루를 응원하며 일주일 넘는 시간을 밝혀주었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했었다. 학교나 집이 아니면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집에 오면 아무도 말을 걸어주는 이가 없었다. 꽃은 그곳에 있었다. 내 애정을 듬뿍 받아 웃는 낯으로 활기차게 나를 반겨주었다.      


결혼 후 첫째를 키우며 나를 생각하는 문화생활은 끝이 났다. 아이가 16개월쯤 남편이 6개월간 창원으로 파견을 갔다. 청천벽력이었다. 혼자 아기를 도맡아 키울 생각을 하니 내 앞의 문이 쾅하고 닫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크게 숨 쉴 수 있도록 숨구멍이 되어줄, 나를 살아있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문화센터 플라워 레슨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꽃을 마주했다. 지친 혼자만의 육아생활에서 꽃은 힐링 그 자체였다. 매일 데이트하러 나가는 심정으로 수업에 들어갔다.



매번 만나는 꽃은 달랐지만 환희는 더 커져갔다. 꽃을 알수록 미묘한 색감 차이에 눈을 떴다. 어떤 꽃과 매치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를 알게 되었다. 식탁 위에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꽃이 올라가 있었다. 어느 날은 바구니, 어떤 날은 화병 꽂이로, 센터피스로 자연이 선물해주는 아름다움의 극치가 내 곁에 있어줬다.      



둘째가 백일 즈음 코로나가 발발했다. 두 아이 집콕 육아로 심신이 아작 났다. 통잠은커녕 밤새 두세 시간마다 울어댔다. 며칠째 못 감은 머리가 떡져 붙어있었다. 마음 편히 샤워 한번 시원하게 하고 싶었다.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지면 세상이 무너질 듯 울어대는 아가였다. 아직 엄마를 필요로 하는 4살 누나도 나를 연신 불러댔다. 긴 하루의 연속이었다. 어린이집은 물론이고 집 밖을 나서기도 무서운 대유행 시기였다. 3월, 봄은 다가오는 듯했지만 내 삶 속 어디에서도 그 흔적이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내 나뭇잎에서 여리디 여린 연두색 이파리가 보였다. 긴 겨울을 뚫고 나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에 봄을 들이기로 했다. 새벽 배송 알림 문자가 울렸다. 택배 상자를 열었다. 연 보라색 비단향 꽃무가 신문지에 꽁꽁 말려있었다. 둘둘 풀어놓으니 봄이 흐드러지게 용모를 드러냈다. 아이를 앉힌 의자 옆 테이블 위에 올렸다.      



커피를 내려 잠깐의 여유를 찾아본다. 아이 한번 꽃 한번 바라본다. 흘러내릴 듯한 아이 볼살 옆에서 짙은 봄의 생기가 묻어난다. 꽃잎에 코를 갖다 대고 숨을 들이마신다.      


“크으~좋다”      


맥주라도 마신 듯 괴성이 터진다. 진한 향이 코 점막을 스친다. 봄의 생명력을 흡입한다. 아이는 멀뚱히 나를 쳐다본다.      


아직 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가야,

너도 나중에 꽃을 좋아하면 좋겠다.

꽃을 가까이하며 살면 좋겠다.

꽃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마음이 어둡고 심란한 날, 나는 왜 이렇게 육아에 허덕이는가! 자괴감이 드는 날 꽃집을 찾는다. 누군가에게 선물한 근사한 꽃다발을 찾는 것이 아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꽃 몇 송이 추천해주시겠어요?”     


긴 머리 청순한 꽃집 사장님이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를 추천해주신다. 화려한 포장지는 필요 없다.  투명한 비닐에 감싸 투박하게 내미는 작은 꽃다발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꽃을 들고 집에 돌아온다. 쓱쓱 비닐을 펼치니 노란색 라넌큘러스 이파리들이 나를 보고 수줍게 웃고 있다.



꽃 대여섯 송이를 꽃병에 꽂는다. 무심하게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래 바라본다. 햇빛에 꽃잎들이 투명하게 빛을 번쩍인다. 잔잔한 음악을 켜고 커피 한잔 내려 책상에 앉는다. 빛에 반사되는 꽃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책을 읽다가 다시 꽃을 올려다본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꽃에 눈길을 멈춘다. 어쩜 저렇게 나비 날개처럼 하늘거릴까. 그래서 이름이 버터플라이구나 깨닫는다. 아름다움에 몰입한 순간, 어두웠던 마음은 걷힌다. 소소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에 최선을 다하며 생명을 발산하는 꽃들에게서 생기와 에너지를 배운다. 나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꽃을 가까이하는 것은 나만의 문화이자 위로의 의식이다. 내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출입문이다. 내 행복의 발로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받는 게 아니더라도 나를 위해 꽃을 산다. 내 삶에 꽃을 들인다. 나를 사랑하라고 흐드러지게 재잘거리는 꽃잎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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