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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18. 2022

내가 호텔에 가는 이유

혼자를 마주할 자유


2020 2, 코로나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길고   아이 가정 보육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 손을 시시각각 필요로 하는 16개월, 5  아이였다. 하루 24시간을  아이에 쏟아부었다. 엄마라는 이름만 남았다. 나는  삶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 동안의 자유시간을 쟁취해냈다. 남편에게 이렇게는 못 버티겠다고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물 같은 9시간이 주어졌다. 예전 같으면 서울에 가서 뮤지컬을 보거나 전시회를 찾았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수다에 빠졌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모든 가능성을 빼앗아갔다. 인간관계는 단절되었다. 누구를 만나는 것이 도박에 가까운 위험상황으로 변해버렸다. 공연은 취소되었고 전시도 문을 닫았다. 갈 곳 이 없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하나 있었다. 호텔이었다. 호텔에서라면 누구도 신경 안 쓰고 걱정 없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새로 생긴 호텔을 찾았다. 들어가는 문 앞에서 주춤거렸다.


' 혹시 혼자 호텔에 가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몇 명이세요?"

"한 명이요..."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하는 10대 청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리셉션에서 나를 힐끔 쳐다봤다.


'여자 혼자 호텔에서 뭐 하려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망치듯 키를 받아 들었다. 긴장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문을 눌렀다.


https://pixabay.com/users/JanClaus


603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선뜻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혼자는 처음이었다. 보드라운 침대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내린 눈이 하얗게 쌓인  주름 하나 없는 판판한 이불이었다. 커다란  앞으로 이중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깨끗한 바닥과 먼지 하나 없는 선반이 보였다. 모든  정갈하고 차분했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은 어느새 차분한 분위기에 녹았다. 안심되었다. 내 앞에 펼쳐진 자유시간, 그리고 10평 남짓 나만의 공간이 선물처럼 포장지가 풀려 놓여있었다.


드리워진 커튼을 살짝 걷었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하늘이 보였다. 광장의 공원이 보이는 위치였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원두 티백에 물을 부었다.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김이 폴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머그컵을 맞잡았다. 창가 앞 의자에 앉았다. 고요했다.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흩날리는 눈을 멍하니 바라봤다. 오랜만에 발견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식도를 넘어간 커피 한 모금이 부드럽게 몸 안으로 퍼져갔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엄마인 수전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부터 그녀는 호텔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매일 같은 호실, 19호실을 달라고 주문한다. 그곳에 들어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온다.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앉아만 있다가 온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화려한 부잣집을 놔두고 허름한 호텔 방을 찾게 한 것일까.


어쩌면 결혼한 여자에게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을  있는 ‘공간만큼이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또한 간절할지 모른다. 19호실에 들어간 수전이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정말이지 머리를  비울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 이유미의 <자기만의 (책) 방> 중에서


결혼하면서 여자들은 자기 방을 잃는다. 그들 앞에 놓인 건 끊임없는 집안 일과 육아가 펼쳐지는 집안이다. 모든 방에서 끈질기게 그녀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싱크대에는 설거지할 그릇들이 쌓여있다. 소파에는 개어야 할 옷가지들이 엉켜있다. 바닥에는 쓸어야 할 먼지들이 굴러다닌다. 식탁에는 아이들이 먹다 흘린 음식 찌꺼기들이 말라붙어있다. 방에는 치워도 치워도 어질러지는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다. 모든 방은 그녀의 일감이다. 어디에도 마음 편히 쉴만한 공간은 없다. 그녀에게 집은 의무만이 남은 쌀쌀한 공간이 되었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빈방에서 나는 자유를 느꼈다. 모든 의무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자리했다. 책을 꺼냈다. 침대 한가운데 누워서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니다. 이곳엔 나 혼자다. 천천히 책 속의 세상으로 빠져든다. 좋아하는 영화 <라라 랜드>를 튼다. 먹고 싶던 음식을 룸서비스로 주문한다. 영화를 보며 파스타를 먹고 맥주도 마신다. 낮잠을 잔다. 이곳에서 내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쉬어야 할 의무,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할 자유다.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본다. 얼굴에 오랫동안  맞게 끼고 있던 엄마라는 가면을 잠시 벗어 내린다. 햇빛을 보지 못한  진짜 얼굴의 맨살이 드러난다.



호텔에서의 반나절이 흘렀다. 모든 애착에서 멀어져 홀가분함을 만끽했다.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아이들을 마주한다.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집안일이 눈에 보인다. 서로 안아달라는 아이들의 질투 어린 울부짖음이 몸을 누른다. 그래도 다시 리셋된 마음가짐으로 이 모든 것을 껴안아 받아들인다. 다시 마음에 배터리가 방전된 날, 내가 찾아갈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빨래 거리를 모아 세탁기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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