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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Dec 20. 2021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어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 1월15일 피아노 소연주회가 계획되었고, 그 자리에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연주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연습했던 곡이라 별로  걱정은 안 되었다. 무대 오르는 연습을 위해 레슨시간에 다른 연주자들이 와서 번갈아 청강을 하기로 했다.


밤 7시, 내가 첫번째 연주를 시작했다. 늘 닫힌 연습실에서 혼자 자유롭게 연주했던 터라 두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첫  음부터 덜덜거리는 손을 컨트롤 하지 못해 실수 연발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연주하던 부분의 멜로디도 삐걱대고 음 이탈이 계속되었다. 얼굴에 화끈한 열기가 끼쳤다. 손이 제 멋대로 음을 빼먹고 다른 건반을 건드렸다. 집중력을 잃고 긴장이 짙어졌다. 아직 쳐야할 음표는 많이 남았는데 그자리에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금 겨우 세 사람 앞에서 이렇게 안절부절 못 하는데, 연주회 당일 수 많은 사람 앞에 설 생각을 하니 땀방울들이 흘러나왔다.


'큰일났다. 나 어떡하지. 괜히 한다고 했나봐. 지금이라도 안한다고 할까. 나이먹어서 이게 무슨 망신이야. 다들 젊은데 나만 아줌마잖아... 왜 사서 이 공포를 대면해야하지? 피할수도 있는건데 지금이라도 그만둔다고 할까...'


머리속에서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가시덤불처럼 엉켜 내 속을 괴롭혔다. 포기하면 마음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도 어쨌든 이 곡은 끝내야 했다. 어영부영 얼렁뚱땅 계속 건반을 눌러나갔다. 자괴감을 손끝에서 떨쳐버리려 안간힘을 썼다.


계속 연주를 이어갔다. 클라이막스를 넘어 다음 멜로디 변주가 시작될 무렵 마음이 한결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은 여전했으나, 손 끝에서 긴장으로 피어난 불필요한 힘들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이제 여리게, 진하게, 빠르게 등 표현을 가미할 수 있었다. 건반위로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잘해왔다고 위로해주는 듯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긴장할 필요 없다고, 다들 비슷하다고, 너만 못하는게 아니라고, 누구든 실수는 하는 법이라고, 끝까지 해내는게 중요하다고 내 안의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는 듯 했다.


못마땅한 실수투성이라 부족함을 절절히 느꼈다. 그런데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포기하기전에 더 연습해서 다음 번에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줌마면 어때, 애 키우면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해야하나?' 하는 오기가 발동했다.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 다시 피아노를 시작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도전하고 싶었다. 실패해도 실수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작가들은 살다가 실패나 좌절을 맛보고 어려움이 닥치면 글감을 발견했다고 기뻐한다는 구절을 읽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어제 그 낯 뜨겁고 부끄러운 경험을 마주했을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빨리 집에 가서 글로 써야지 였다. 글로 풀어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새로운 일 별로 없는 내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에 뭔가 색다른 일이 생겼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을 느낀다. 어려움도 좌절도 그것만의 의미가 있다는 것. 인생에는 어떤 사소한 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경험은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글쓰는 내 삶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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