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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Oct 08. 2023

칼렘쇠르그의 낚시 가이드

칼렘쇠르그로 가 길은 쉽지 않다.


날씨가 궂어 배가 뜨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중요하다. 바다가 잔잔해 배로 던케르 섬까지 간다해도 섬 뒤편으로 가려면 반나절에 한두번 섬을  한 바퀴 도는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 운전수 얄베르 노인이 천식 기침이라도 발작하는 날에는 꼼짝 없이 걸어야만 한다.


길은 외길이니 걷다보면 틀림없이 섬 뒤편에 가겠지만 배를 대는 기슭을 찾는 것이 곤란하다. 던케르 섬의 후미는 고만고만한 모래톱들이 커다란 바위들 사이로 들고 나 있다. 초행길에는 이 바위와 저 바위 사이에서 헤메다 그곳이 그곳 같은 모래톱 중 하나에 털썩 주저앉게 마련이다.


아무런 표식 없는 모래톱 하나를 용케 알아보거나 혹은 그저 운이 좋아 바로 그 모래톱에 주저앉게 되더라도 끝이 아니다. 배는 매일 오지도 않는데다 같은 시각에 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일 낚시꾼 소년의 기분이 매우 좋아 뱃길 산책을 나섰거나 마침 던케르의 잡화점에 신발 밑창이라도 사러 오는 날이면 냉큼 손을 휘휘 흔들며 신호를 하면 된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거나 몸집이 배의 절반도 넘게 크지 않다면 소년은 걷듯이 한들거리며 배를 대어 올 것이다.


배에 오르기 전 신발에 묻은 모래를 세심히 털어주는 것은 중요한 예의이다. 소년은 언제나 배를 따스하고 부드럽게 잘 닦아놓기 때문에 젖은 모래를 풀썩 뿌리며 배에 올랐다간 낚시 하는 내내 귀찮은 잔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칼렘쇠르그에 가는 이유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만 특별히 잡히는 진귀한 어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낚싯대만 드리우면 줄줄이 팔뚝만한 물고기가 올라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꼭 어딘가에서 칼렘쇠르그의 이름을 듣고 낚시를 하러 오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은 자만의 휴가를 즐기고 싶거나 남들이 모르는 장소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몇차례나 반복해 오는 이들도 있고 매년 비슷한 시기에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처음 오는 이들은 비교적 나어린 소년이 낚싯배를 모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호기심 반, 적적함 반으로 소년의 가족이나 나이, 학교에 다니는 지 묻기도 한다.

그러나 재차 칼렘쇠르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소년이 자신과 관계된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게 그들은 소년과 단둘이 배를 타고 칼렘쇠르그로 갔다.

낚싯배를 만나지 못한다면 모를까, 이미 배를 타고 나서면 어김없이 날씨는 쾌청하고 파도는 잔잔했다. 윤슬이 어지럽게 춤추는 바다 위에서 한두 마리 쯤 건져올리고 나면 으레 배도 고파오고, 졸음도 오고, 온갖 생각들도 오곤 했다.


찾아오는 이들은

그러니까 낚시를 하러 왔다.


그 이유가 아니고서는 배에 태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들은

낚시를 하다 갔다.


그러나 그들이 낚는 것은 손바닥만한 청어나 팔뚝만한 대구보다는

종종 삶의 갈림길에서의 결심이나 줄곧 믿어온 의지의 확인, 잊고 지낸 소중함 같은 것이었다.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암초 투성이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만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대개 마음 깊이 만족하며 돌아가곤 했다.


모래톱에 객을 내려놓는 시간은 해질무렵으로 변함이 없었다. 이른 아침 배에 탄 증권거래인도, 오후 늦게 배를 발견한 신문기자도 다시 모래톱에 내릴 때는 딱 해질무렵이었다. 시간에 제법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조차 그것이 당연하게 납득이 가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칼렘쇠르그를 그리워하거나 종종 돌아오거나 누군가에게 말하곤 했다.

ㅡ 요새 많이 지쳐보이는데, 혹시 칼렘쇠르그라고 아는가? 하루 쉬고 오기엔 그만한 곳이 없거든.

ㅡ그리 멀지도 않아. 삯도 저렴하고.

ㅡ거기를 어떻게 가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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