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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Aug 07. 2020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글이 쓰고 싶다거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글로 먹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 본다.


물론 굳이 먹고 살지 않더라도 글은 쓸 수 있다.

굳이 글이 아니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과

내게는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글

돈은 받지만 읽히지 않는 글

좋아요는 받지만 누구도 사지 않는 글


그래서 어디론가 묻혀져 버리는

심지어 서버 제공사의 서비스 종료로

정말로 원본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글들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뿌려놓았다,

제법 오래도록.


생계는 여전히 목전이고

내게는 지지리도 쓸 것이 없는데

십오년 전 구상하여 술자리에서나 떠들던 이야기가

아직도 내 전부인데


어째서 구직사이트를 헤메던 내 손은 또다시 공모전에 가 머무는 걸까.


그저그런 인생을 자인하기 어려운

제법 추켜올려지던 어린 시절을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현실의 나를 부정하기 위해 줄곧 우려먹은 레퍼토리를

이제와 꿈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남편을 처음 만났던 때에

나는 작은 장르소설 출판사의 사무실에서 밤새 글을 쓰고 있었다.


몹시도 날려 써서 금세 뚝딱 뽑아내었던 정체모를 것이

그로부터 수 년 전 그런 짓을 하다가는 아무 것도 쓸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내게로 향했던

그 교수의 손가락 끝에 여전히 쿡쿡 찔리고 있었다.


시대를 모르는

아니 꼰대의 유치한 비아냥이라고 여겼던

그 자신만만하면서도 생계를 방패 삼던 여대생은

그로부터 수 년 후 사방이 깜깜하고 적막한 변두리 한 켠에서

달랑 컴퓨터 한 대 주어진 괜히 큰 사무실 바닥에 전기장판을 틀어놓고는

밥 대신 막걸리를 홀짝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한달에 두 권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은

속도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부족하여 곧 내동댕이 쳐 졌고

작가님 작가님 하던 대표와 그 일동은

어느 순간 더 독촉해 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주 흔해 빠진 나 자신을 인정하기가 뼈 아픈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기에

곧 시선을 돌려 나를 다른 예비된 실패 속으로 몰아넣고

그 시간을 잊었다.


심지어 별로 페이가 적지도 않았는데

주류문학에 대한 지향 따위도 없으면서

내가 뽑아 낸 잡스러운 이야기를 몇 번 다시 읽어보고

죽을만큼 창피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사무실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신춘문예 한 번 두드려 볼 요량이라도 생긴 양

어째서 공모전 언저리를 들추고 다니는 걸까.


나는 이태껏 정통문학도 장르소설도 하다못해 야설이나 블로그 포스팅도 꾸준히 써온 일이 없다.

더군다나 내게는 습작이 거의 없다.

푹 익기 전에 인터넷 같은 곳에 글을 올려 버릇 하지 말라던 그 교수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나는 퇴고도 없이 즉설을 아무에게나 내보여왔다.


깊이도

배경지식도

숙고도 없는 그저

이야기.


아이 잠자리에서 술술 읊는 수준의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


그런데도 왜 나는 또 다시

생계가 숨통을 빠듯하게 조여오는 이 시점에

글이 쓰고 싶을까.

그것도 누군가 읽어 줄

누군가 돈 주고 사줄 글이.


마지막이라는 유치한 단서를 달아가며

기껏 다시 꺼내든 이 소망을

어째서 지레 자책하며 변명보다 더 비겁하게 감싸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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