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게 빠듯한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투자나 제2의 직업을 위해 공부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너무나 큰 위치에 놓여있다. 그로 인해 돈이 정말 최고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돈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며,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취업을 하려고 그토록 노력하는 것도 일이 좋아서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월급이 필요해서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 안정감을 주고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고용은 너무 불안하다. 아무리 노동법으로 해고가 쉽지 않다 하더라도 그건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내보내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불합리한 인사이동이나 진급 누락, 부당한 인격 대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힐 수 있고, 그때마다 '경제적 자유만 확보되었더라면 이런 더러운 곳 당장 사표 쓸 텐데'라며 경제적 자유를 꿈꾸기도 한다.
경제적 자유란 시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도 보장한다. 어쨌든 돈이 있으면 대부분의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가능한 것이며 자본주의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장점이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목표가 틀어지는 순간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수익이 나지 않는 회사는 생존할 수가 없다. 직원들 월급이나마 밀리지 않고, 서비스를 유지, 발전시키려면 지속적으로 수입을 내야 한다. 그래서 종종 돈을 위해 우선순위가 기업 경영 철학과 맞지 않는 선택을 하곤 한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비전은 가지고 있다. 저마다 비전의 가치나 중심점이 다를 뿐이지 미래를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비전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비전을 관철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에 비전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가령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 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도 비슷하다. 가난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보다 당장 현실을 극복할 일을 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싯다르타의 한 일화가 떠오른다.
상인: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줄 수 있다는 말이오?
싯다르타: 모든 사람이 가진 것들을 내놓습니다. 병사는 힘을, 상인은 물건을, 교사는 가르침을, 농부는 쌀을, 어부는 물고기를.
상인: 그건 잘 알겠소. 그럼 당신은 뭘 줄 수 있다는 거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잖소?
싯다르타: 저는 생각하고, 기다리며, 금식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것들입니다.
상인: 그게 다요?
싯다르타: 그렇습니다.
상인: 그것들이 뭔 쓸모가 있다는 거요? 금식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요?
싯다르타: 참으로 큰 가치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금식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금식을 몰랐다면, 저는 오늘날 먹고 살 일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겁니다. 당신과 함께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왜냐하면 배고픔이 나를 부채질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나는 조용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나는 조급하지도 절박하지도 않으며, 오랜 시간 배고픔을 멀리하고, 그것을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 조급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인내를 갖고 있는가
싯다르타가 말하는 금식의 가치가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에 십분 공감한다. 인내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끼니 한 끼를 참는 그런 간단한 것을 뛰어넘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극복함을 의미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에 인내를 갖는다고 표현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레임을 달리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는 인내와 통찰로 현재의 고통을 참아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평소 어떤 훈련을 해왔는지, 그로 인해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는지에 대한 가치를 명확히 알고 우리에게 전한다.
투자나 투잡이 종용되는 요즘, 나의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그 가치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할 것과 얼마나 맞물려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목표나 비전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생계에 쫓겨 떠밀리듯 바꾸면 안 된다고 싯다르타는 경고한다.
생존의 문제를 쥐고 흔드는 것만큼 강렬한 유혹은 없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인내하지 않고 덥썩 물게 되면 나는 남이 설계한 인생을 따라 살게 된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 위에 내 길은 없다. 개성도 사라진다. 하지만 고통 속에 인내하고 생각하며 나만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놀라운 혁신을 가져오는 사람, 혹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 싯다르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얼마 전 송가인을 보면서 그가 판소리 창법과 트롯을 한데 묶어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1대 미스 트롯은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7년이라는 긴 무명시절을 거쳐 겨우내 꽃을 피워낸 한 사람이다. 7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갈등을 생각해본다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으리란 짐작이다.
그런 것은 범인이나 하는 것이지 나는 불가능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송가인이 미스 트롯이 되기 1년 전만 하더라도 스스로가 1대 미스 트롯이 될 거라 상상이나 했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예측을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그녀는 자신의 창법을 지킬 줄 알았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한번 더 되새기게 된다.
여전히 수많은 것들에 흔들리는 요즘이다. 다양한 정보들과 성공사례가 우리의 눈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그 수많은 성공사례와 내 성공씨앗은 잘 맞물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씨앗을 뿌리기만 하고 제대로 키워내질 못한다. 그 인내의 시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그동안의 노력을 백지화시킨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말은 단 하나다. 내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꾸준히 관철시키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어느 외풍에 휘둘려 흔들리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받고 있으며, 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장본인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나의 적에게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흘린 말일 수도 있고, 지인의 진심 어린 우려 속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적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그것을 버리기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당신의 인생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목소리와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관철할 줄 아는 사람.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나만의 길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어느 화창한 봄날 다짐해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삶을 제대로 못 살아 낸 것을 무서워하라고.
그럼 많은 부분들이 아마 정리가 될 것 같아요.
- 강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