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 한 점은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다른 책을 제쳐두고 먼저 읽어도 상관이 없을 터인데 고집을 부렸던 샘이다. 나는 어떤 이유로 기준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걸까?
퇴근을 하는 길에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살이 찔까 봐, 속이 좋지 않아서 등 이유로 미룬다. 그리고 선택하는 것이 과자다. 과자나 떡볶이나 속을 부대끼게 하나, 열량으로나 비슷한데 왜 나는 과자를 선택할까? 차라리 처음 욕망했던 떡볶이를 먹는 게 더 나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평소 하지 않는 선택일수록 이전에 질문이 따라온다. 이걸 해도 좋은 걸까? 먹어도 괜찮을까? 등. 이렇게 물어본다는 것의 대부분은 답이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다. 일전의 떡볶이 사례처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어도 될까?라고 질문해버림으로써 스스로 아니라고 답을 내린 샘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떡볶이를 먹어도 될까? => 속이 좋지 않아 안된다고 라고 했을 때, '그럼 뭘 먹지?'라는 질문이 연속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해답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답을 내놓고 다른 먹을 것을 찾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았지만 다른 대안을 찾았는데 그 결과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샘이다. 어쩌면 일을 미룰 때의 나쁜 점도 이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일을 미룸으로써 일정이 밀려 나쁜 거라기보다, 일을 미뤘지만 그 순간 딱히 의미 있는 일도 하지 않는 문제점이다.
차라리 맘 편히 놀고 다시 마음잡고 하면 되는데, 이도 저도 아닌 일에 시간을 허무하게 보낸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사이에서 둘 다 선택하지 않고 덜 급하고 덜 중요한 일로 시간을 뺏기는 것, 이것이 가장 최악이라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리포터를 작성하려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왠지 뿌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정작 해야 하는 리포터는 손도 대지 못했다. 결국 해야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샘이다.
할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것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했기 때문에 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충동적으로 생각난 일에 시간을 뺏기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빠져들다 보면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할 일을 미루지 마라'는 말은 정말 명언이다.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나중’이고,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단어는 ‘지금’이다.
- <실행이 답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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