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한단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한번 여행을 가게 되면 어디를 갈지 생각해두고, 계획을 나름 꼼꼼히 세우는 편이다. 몇 시 비행기를 타고, 어떤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어디를 들리면 대충 X시가 되고 등.
그러던 내게 최근 제주도를 다녀올 여유가 있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거기서 느끼는 것은 이전과 다른 여행의 묘미였다.
저마다 여행의 재미가 있다. 내게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다 이번에 계획 없이 가게 된 제주에서 첫날 몇몇 곳을 돌아보고 난 뒤 든 생각은 '지루함'이었다. 새로본 것이었지만 어디선가에서 봤었던 비슷한 풍경, 자연, 바다 등이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음날에 갈 곳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묶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들과 술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디 다른 곳을 돌아보는 것보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말을 잘해서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몇 시간을 경청해 듣다 보니 어느덧 밤늦은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파했다.
만약 내가 이번 여행에도 빠듯한 일정으로 가득 채웠다면 그런 대화가 가능했을까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몸을 끌고 숙소에 돌아오면 분명 피곤에 지쳐 잠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곳에 연박하면서 이미 그곳에 지내고 있는 사람들과 안면을 튼 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쫓기면서 살면 여유가 붙지 않는다. 지인 중 한 명은 하루 종일 바쁜 티를 내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는 있지만 선뜻 먼저 말 걸기엔 주춤댄다. 왠지 그런다. 분명 그런 사이를 넘었는데도 불구하고도 그렇다.
얼마 전 독서모임을 했다. 리더십 관련 책이었는데 어느 한 파트에서 '사람에 대해 온 신경을 다쓰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회의를 할 때 말하는 사람에게 온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 내가 만약 바쁘다면 회의를 하건, 대화를 하건 몸은 분명 거기에 있겠지만 마음이 딴 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가 있기에 상대방의 말에 경청할 수 있게 된다.
바쁠수록 여유를 갖는 것,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게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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